10월, 2025의 게시물 표시

김서권 칼럼 #269ㅣ나를 싫어하는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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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싫어하는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가끔은 내가 제일 보기 싫다. 누군가 잘하는 걸 보면 마음이 뒤틀리고, 인정하기 싫은 질투가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자존감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자존심이다. “나도 잘할 수 있어.” “나도 인정받고 싶어.” 그 외침 속엔 그리스도를 잃은 나의 고아된 심령이 숨어 있다. 이 시대는 “너는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상처를 포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우상일 뿐이다. 자존감이라는 이름 아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자란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나를 잃어가고, 결국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내 실패처럼 느껴진다. 복음은 말한다. “너는 네가 사랑받을만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랑받고 있다.”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혁명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값으로 산 사랑의 언약 안에 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자존감은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존감은 그리스도의 존귀함이 내 안에 들어올 때 세워진다.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실 때,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나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를 통해 나의 교만을 비추신 하나님의 거울을 본다. 그 앞에서 나를 낮추는 순간, 은혜가 흘러 들어온다. 비교의 자리에서 벗어나 감사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시대의 병은 “나를 높이려는 예배”다. 그러나 복음의 길은 “나를 비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다. 그분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실 때,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의 자존심을 녹이고, 자존감을 새롭게 빚어 사명으로 변화시킨다. 나는 나를 사랑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내 안에서 질투를 감사로, 자존심을 겸손으로, 비교를 사명으로 바꾼다. 오늘도 나는 나를 싫어하는 나를 품으신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진짜 자존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복음의 나'를 다시 만난다. 예수는 그...

김서권 칼럼 #268ㅣ모압의 밤, 교만의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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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의 밤, 교만의 울음”   ㅡ 이사야15장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밤이 깊었다. 모압의 성읍마다 불빛이 꺼지고, 왕의 탑이 무너졌다. 찬란했던 성문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르가 무너지고, 기르가 황폐하였다. (이사야 15장 1절) 그들의 손에는 힘이 남아 있었으나 하나님의 뜻은 이미 떠나 있었다. 그들은 높은 산당으로 올라가 그들의 신 ‘느보’와 ‘그모스’를 찾았다. (이사야 15장 2절) 그러나 신전의 돌들은 차가웠고, 향기는 타버린 재처럼 공허했다. 하늘을 향한 울부짖음은 끝내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 사람의 권세와 문화의 탑, 그것이 사탄이 세운 바벨의 후손이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지탱하려는 힘, 그 교만의 구조가 밤새 무너지고 있었다. “니므림의 물이 마르고, 푸른 풀이 사라졌다.” (이사야 15장 6절) 모압의 번영은 하나님의 숨결이 떠난 자리에서 허무로 바뀌었다. 삶의 강이 말라가고, 사람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울음 속에서 하나님은 또 하나의 진리를 드러내셨다. 하나님 없는 번영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탄의 계획은 화려함으로 포장되지만, 그 끝은 늘 공허와 황폐함이다. 그날 밤, 모압의 도시는 사람의 영광으로 지어진 세상의 전형이었다. 사탄은 인간의 교만을 미혹하여 하나님 없는 문명을 세우게 했다. 그러나 그 문명의 불빛은 한밤의 바람 앞에서 꺼져버렸다. 이사야는 그 무너진 도시를 바라보며 울었다. 그의 울음은 조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눈물이었다. 하나님은 심판의 칼로 죄를 자르시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회복의 길을 두신다. 오늘의 세상도 모압과 다르지 않다. 탑은 더 높고, 불빛은 더 강하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 없는 두려움으로 지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 없이 번영을 노래하나, 그 노래는 곧 울음이 되리라.” 그러므로 나는 기도한다. 무너진 모압의 폐허 위에서, 또 한 번 성령의 바람이 불어 죽은 믿음이 다시 살아나기를. 하나님은 교만...

김서권 칼럼 #267ㅣ예복을 입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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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복을 입은 자”  ㅡ 마태복음 22:1–14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하늘나라는 혼인잔치와 같다. 임금이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나, 초청받은 자들은 오지 않았다. 누구는 밭으로, 누구는 사업으로, 누구는 이유를 붙여 거절했다. 그들의 귀에는 왕의 초대보다 세상의 이익이 더 크게 울렸다. 그러자 왕은 종들에게 말했다. “네거리 길로 나가라, 만나는 자마다 데려오라.” 그리하여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불려 들어왔다. 잔치 자리는 가득 찼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복 없이 잔치에 앉아 있었다. 왕이 물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침묵은 신앙의 부재였다. 그의 침묵은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는 고백이었다. 예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의 표식이었다. 세상의 옷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인간의 선행과 종교의 노력으로는 그 잔치의 빛 앞에 설 수 없었다. 예복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믿음으로 입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청함을 받을 수 있으나, 은혜로만 택함을 입는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자만이 그 왕의 기쁨 안에 거한다. 오늘도 세상은 잔치의 초청을 거절한다. 시간이 없다고, 바쁘다고, 아직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 그대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해 예복을 준비해 두셨다는 것이다. 그대의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 그대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단장하라. 그날, 왕의 잔치에 들어갈 자는 청함을 받은 자가 아니라, 택함을 입은 자이리라. 세상은 초청받았으나, 하늘은 택하신 자로 가득하리라.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 그는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빛난다. 그의 의는 인간의 옷감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짜여진 보혈의 옷이다. 오늘도 임금은 부르신다. “오라, 내 잔치에 참여하라.” 그 초대는 세상 모든 자에게 열렸으...

김서권 칼럼 #266ㅣ빛이신 그리스도, 어둠을 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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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신 그리스도, 어둠을 뚫다”··· 귀신의 시대, 성령의 시대를 향한 복음의 선언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세상은 여전히 밝다. 도시는 불빛으로 잠들지 않고, 사람들은 지식을 신처럼 섬긴다. 그러나 그 빛 아래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허, 말할 수 없는 외로움, 웃음 속에 스며 있는 깊은 절망. 그것은 단지 심리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영적 상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방향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지배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이었다. 그분은 단 한마디 말씀으로 어둠을 흔드셨다. “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가복음 1장 25절) 그 음성은 지금도 들린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이 병든 이 시대를 향해, 그분은 말씀하신다. “네 영혼이 병들었다. 너는 살아 있으나, 빛이 없다.” 귀신은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보이지 않게 다가와 인간의 마음을 비워놓는다. 분노가 머무는 자리에, 미움이 자라는 곳에, 절망이 깊이 뿌리내린 곳에 그는 안식처를 삼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는 순간, 그 모든 어둠은 흔들린다. 그분의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권세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장 18절) 그리스도는 단지 종교의 인물이 아니다. 그분은 죄의 뿌리를 자르고, 사탄의 결박을 끊고, 인간의 내면을 다시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라.” (사도행전 2장 36절) 그 한 문장은 역사의 중심이고, 모든 어둠을 뚫는 하나님의 해답이다. 이제 복음은 더 이상 교회 안의 언어가 아니라 시대의 해독제가 되어야 한다. 기술이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고, 쾌락이 인생의 목표가 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이 한 가지를 묻고 계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 6장 8절) 나는 대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시대의 귀신은 더 이상 들리는 소리로 오지 않는다. 중독의 ...

[김서권 목사] 오늘을 위하여 2025 #199ㅣ사탄, “교만의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이사야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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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 “교만의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이사야 14장  도시는 오늘도 빛난다. 유리 벽은 하늘을 베끼고, 전광판은 사람의 이름을 별처럼 띄운다. 그러나 그 빛을 오래 바라보면 안다. 눈이 멀어 갈수록, 마음은 더 어두워진다는 것을. 어느 날, 한 별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올라가리라. 내 자리를 높이리라. 가장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합리적이었다. 성공이라 불렸고, 자기실현이라 포장되었다. 그러나 그 끝은 낙엽처럼 가벼운 추락, 스올의 먼지까지 떨어지는 길이었다. 그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탑을 세웠다. 데이터의 탑, 자본의 탑, 종교의 탑. 하나님 없이도 선할 수 있다고, 하나님 없이도 영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탑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그 그림자 속에서 아이들은 잠을 설친다. 분노는 정의로 위장되고, 복수는 공의의 이름을 훔쳐 쓴다. 억류된 자들의 한숨이 도시의 지하를 물처럼 흘러간다. 그때, 하늘의 바람이 낮게 속삭인다. “나는 높아지려 오지 않았고, 낮아지려 왔다.” 한 분이 오셨다.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가장 높은 분의 마음을 드러내신 분. 그분의 영광은 구름 위가 아니라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 위에 머물렀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선언하셨다. “다 이루었다.” 교만의 언어가 멈추고, 겸손의 왕이 즉위하셨다. 그날, 바벨론의 음악은 삐걱였고 억류자들의 사슬은 녹슨 소리를 냈다. 진리는 싸우지 않았고, 그저 빛났다. 어둠은 빛과 논쟁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배운다. 하늘에 오르는 법이 아니라 무릎을 꿇는 법을. 자리를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용기를. 사탄은 여전히 속삭인다. “너는 더 올라가야 한다.” 성령은 조용히 일으키신다. “너는 나와 함께 서라.” 한쪽은 광야를 약속하고, 한쪽은 길이 되신다. 그러니, 도시여, 들으라. 높아진 이름들 사이로 낮아진 이름을 부르라.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권세가 되어 땅을 진동시키던 손을 멈추게 하고, 나라들을 흔들던 숨...

[김서권 목사] 오늘을 위하여 2025 #198ㅣ마비된 영혼을 푸는 결단, '그리스도를 만나자' (누가복음 5장 17-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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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이 마비된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받겠다는  간절한 믿음으로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뜯고 침상을 내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육신과 마음과 영혼이 마비된 상황에서  ‘치유받자’ ‘해결받자’ ‘그리스도를 만나자’라는 결단이 있으면  예수님은 반드시 치유의 증거를 주십니다. 죄 사함의 권세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치유방식은  죄로 인해 마비된  우리의 영혼부터 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뒤틀어진 운명에서 빠져나와  구원을 받았으니 오늘부터 하나님과 거래하고 계산하는  사람의 언어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언어로 하나님의 숨결을  몸과 영혼에 불어넣으십시오. 원래 흙덩어리인 우리 몸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가야만 성령 충만 속에서  기도의 능력이 불타오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과 가정과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고 하나님 나라부터 임하게 하십시오. 성령을 힘입어  우리 속의 더러운 귀신을 내어쫓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틀어지고 마비된 영혼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치유방식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됩니다. 아멘!  (누가복음 5장 17-26절, 마태복음 21장 13절, 12장 28절, 고린도후서 5장 17절) 📣[누가복음 020강] 죄 사함의 권세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치유방식ㅣ2025년 10월 26일 주일2부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칼럼 #265ㅣ잎만 무성한 신앙을 넘어, 열매 맺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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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무성한 신앙을 넘어, 열매 맺는 믿음으로”   ㅡ 마태복음 21:18–22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이른 아침, 예수께서 시장하셨다. 그분의 허기는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느끼는 영적 기갈이었다. 길가의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겉은 풍성했으나, 속에는 아무 열매가 없었다. 그 잎은 믿음 없는 종교의 치장, 율법의 그림자 아래 감춰진 자기 의의 상징이었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 순간, 나무는 마르고, 잎은 스스로의 허황함을 드러냈다. 믿음이 없는 형식은 결국 시든다. 기억하라 — 하나님은 잎이 아니라 열매를 찾으신다. 제자들이 놀라며 묻는다. “어찌하여 나무가 곧 말랐나이까?” 주께서는 대답하신다.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신 믿음은 자기 욕망을 이루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기도는 나의 소원을 관철시키는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나를 일치시키는 자리다. 잎이 무성한 교회, 말은 많은 성도, 감정은 뜨거우나 삶에 열매가 없는 시대여 —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의 뿌리를 다시 살린다. 형식이 아니라 복음의 생명이,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드러난 순종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한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너의 마음 밭을 지나가신다. 잎만 무성한 나무인가, 복음의 열매로 익어가는 나무인가. 믿고 구하라 — 그분의 뜻 안에서, 이미 응답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마른 나무는 다시 살아나며, 열매 없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향기가 피어난다. 예수는 그리스도. “주여, 내 안의 잎사귀를 걷어내고 그리스도의 열매가 맺히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