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2ㅣ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드리는 삶
![]() |
|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복음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를 세 번 정복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 정복은 노아의 믿음에 의한 승리였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도래한 네피림 시대의 타락을 한탄하신 하나님께서 당대의 의인이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노아를 통해 방주를 짓게 하시고는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역사 가운데 완전한 영적 승리를 보여주심으로써 세상을 하나님의 뜻, 그 말씀으로 정복하셨던 것이다.
그 이후로 요셉과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승리함으로써 두 번째의 정복이 성경의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애굽 온 땅에 흉년이 들고 온 지면에 기근이 있음으로 각국 백성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가 요셉에게 양식을 사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신에 감동(感動)한 자'는 그 당시의 최고의 강국이라 말할 수 있는 애굽에서 천하 각국을 정복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모세를 통하여 노예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열 가지의 기적적인 재앙사건과 홍해와 요단이 갈라지는 기사를 통해 세계 만방에 복음 즉 여호와의 말씀의 승리가 성취된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어떠하였는가? 갈릴리 어부 출신인 열두 제자와 바울을 통해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 전 세계는 로마로 통행하였으며 로마는 결코 해가 지지 않는 땅이었다. 그 강대한 로마, 현란한 문화가 판을 치고 이미 세계를 정신적으로 제패한 철학적 사고가 만연한 그 땅을 나사렛의 목수였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어부들을 통해 정복했던 것이다. 그 이후 권력과 손잡은 기독교(지금의 천주교)는 타락 일로를 걷게 되었고 기독교는 암흑의 중세교회 시대를 역사 속에 기록하는 안타까움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완전히 왜곡되이 해석하고 권력과 금전의 통로로 사용하였던 천주교는 그 이후 루터와 칼빈에 의해 개혁되었으나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늘, 지금도 살아계시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다시 말하면 세계 각국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들 손에 의해 세계 만민이 정복되리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실 것인데 왜 우리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을까?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었고, 요셉은 세상이 다 아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자로서 세계적인 비전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모세는 그가 비록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의 시련 가운데 있었으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히 11:25) 지도자였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예수님과 동거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직접 보았으며, 바울은 율법으로 흠이 없는 큰 자였다.
그런 그들에 비하여 우리는 누구인가? 깨어지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사단의 계략에 빠져 흔들리고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 세계정복은 고사하고 자신의 문제나 마음, 심지어 자신의 생각 하나도 제대로 정복할 수 없는 형편없이 약한 존재···.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아비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과 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진토임을 아시기 때문이라 하셨을까.
그런 우리를 통해 세계를 정복하시겠다고 계획하신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십자가 상에서 내어주시고 그로써 자신의 사랑을 확증시킨 예수 그리스도, 지금은 부활하셔서 영으로 함께 우리와 동거하시는 성령 하나님, 그 분의 능력을 이미 우리 안에 부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또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다면 성령충만한 삶이란 무엇일까?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세계를 정복하는 삶이다. 아니 비행기라고는 타본 적이 없어 가까운 일본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는 성도가 수두룩한데 어찌 세계를 정복한단 말인가. 그것은 특별히 사명받은 선교사들이나 받은 바 임무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세계를 정복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안에 성전 삼으시고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는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하셨던 갈릴리의 그 산에서 함께한 열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면전에서 대하고 경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몇은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 그 힘있는 권세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현장에서의 세계정복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역사(His story)로 만들어 가시는 데 있어 사람을 사용하신다. 각 사람들, 특별히 그가 사랑하셔서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셔서 임마누엘로 함께하시면서 더불어 만남의 복을 허락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은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 만남의 이야기들이 곧 우리 삶의 이야기가 되고, 이 각자의 삶의 이야기들이 사회와 민족과 나라의 이야기들로 엮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곧 우리 각자의 이야기들이 세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너무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지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역사란 개인의 이야기들이 주변의 또 다른 개인들의 이야기와 어울어진 하나님, 즉 그 분의 이야기(His-tory)들이 아닌가. 개개인을 창조하시고, 택하시고, 그들의 삶의 깊숙한 현장 가운데 개입하시는 분, 그리하여 당신과의 만남을 준비하셨듯이 또 다른 복된 만남을 준비하시고 실행하시는 분, 그 분이 곧 우리의 주인이시며 동시에 끝없는 우주 가운데 푸르게 빛나는 지구를 띄우시고 돌리시는 그 분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주관자이기 때문이다.
성령충만한 삶, 이는 곧 이렇듯 우주 안에서 운행하시는 원대하신 분이 곧 우리의 작고도 연약한 마음에 들어오셔서 그 분의 원하시는 뜻대로 역사를 만들어 가시도록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드리는 삶이 아닐까.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7.07.
영적세계전문가

아멘!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