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5ㅣ교사가 아닌 증인으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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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
작년 여름에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곳 선교사님과 함께 파리 시내와 근교를 두루 다니며 전도하기로 계획을 세운 여행이었는데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갖가지 유물들과 아름다운 경치들이 있었지만 역시 나에겐 영혼만큼 중요하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메트로에서 만나 베트남 유학생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말했더니 뜻밖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지금 자살을 하러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놀라운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얘기해 주고 더욱이 행위가 아닌 절대적인 은혜, 율법이 아닌 복음의 위대성을 말해 주었을 때 그 청년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고 얼굴에 희색이 돌아오는 경험도 했다.
많은 교포와, 길에서 지나치며 만나게 되는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아름답지만 영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프랑스를 절실히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만난 유대인 여학생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이 믿는 율법을 완성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구약에서 예언한 이스라엘의 해방자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무리 정성들여 이야기해도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 땅에서 율법아래 죄인 아닌 사람은 그 누구도 없으며 율법아래 완전한 자는 없다고 했지만 그 여학생은 자신의 영적 지도자인 '랍비'만큼은 완전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스승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목회의 길을 걷는 나로서는 그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목회의 길을 걷는 우리는 강단에서 복음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함으로 인해서 마치 우리의 인격 전체가 완전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님 떠난 마음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십사시간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도 순간 악한 영의 궤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강단에서 그리스도의 비밀과 능력, 권세를 말하는 우리 자신들도, 정확히 말해서 목회자마저도 완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유대교의 랍비 또한 다소 정도차이는 있겠으나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그 곤고함이 전혀 없는, 완성된 인격자라고 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율법 아래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우리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으로만 그 거룩함을 닮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었을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난 때로 다른 교회의 직분자들로부터 몇 가지 고민스러운 상담을 듣게 된다. 다름 아닌 섬기고 있는 목회자들에 대한 내용들인데 대부분이 율법적으로 정죄되는 자아정죄감 속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채 답답해 하고 있는 경우들이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의 영혼을 옥죄고 매어두는 답답함이 아니라 오직 해방을 선포하는 자유의 메시지가 있다. 이 자유는 결코 방종과는 다른 것이며 하나님의 원대한 생각, 인간의 생각과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먼 창조적이고 다양한 경우의 이해가 기저를 깔고 있다.
성령충만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자유를 목회자와 성도가 어우러져 구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더 이상 강단에서 이것을 해야 되고 저것을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율법적이고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메시지가 선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주일 중 엿새를 세상 속에서, 좀더 적나라한 표현을 쓰자면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 공중 권세 잡은 자의 궤계가 판을 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지쳐서 교회당을 찾아오는 성도들에게 '휘돌리는' 식의 목회는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종 프로그램으로 내몰아치기보다는 강단에서 영적인 해방을 선포할 때 그들은 자유로움 가운데 자발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 속에서 그들의 영혼이 자유함을 느낄 때 그들의 영혼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마음껏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영의 활달함 속에서 정신이 건강해지고 성도간의 교제가 원활해지는 성령충만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짚고 넘어갈 것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 메시지의 수준이나 내용의 훌륭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님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는 쓰기, 읽기, 말하기에 어두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때로는 단어구사도 적절치 못하고 문장도 어법에 맞지 않을 때가 많아서 그에 대한 일화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그가 '무디'일 수 있었던 것은 영혼들에게 힘을 주고 살리는 메시지, 단지 율법이 아닌 복음만을 말하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훌륭한 신학자는 영혼을 살릴 수 없어도 평범한 신앙인은 영혼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면 너무나 억측일까?
이제는 좀 솔직할 때가 되었다. 자신도 잘 안 되는 율법적 행위나 생각을 오로지 성도들에게만 흑백논리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의 선포만이 낙심되고 허물어지고 포기한 영혼들을 성령충만한 삶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사랑'과 더불어 '사명'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우리에게 친히 모범을 보여주시며 명령한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과 '가서 제자 삼으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된 영혼들과 평안을 되찾은 영혼들을 그대로 두면 또 악한 자의 침입을 받을 수 있다. 마치 깨끗이 소제된 집에 일곱 귀신이 들어가는 예수님의 비유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 때 그들 영혼을 영원한 성령충만함으로 이끄는 것은 '제자 삼는 일'에 대한 사명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임과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아버지의 소원을 아는 자녀가 가장 사랑받듯이, 하나님의 절대적 관심이요, 왕으로서 갖는 영토와 백성에 대한 애정에 부합되는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들 마음의 중심이 있을 때 주님은 바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세상끝까지 미래를 향하여 원대한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삶, 영혼 하나하나를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신념이 아닌 신앙을 심어주고 격려하며 영혼의 자유를 구가하도록 서로에게 힘을 주는 삶, 그리하여서 이십사시간 불붙은 화살을 쏘아대며 공격하는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힘을 축적시키는 삶,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이 아닐까?
그러한 삶으로 성도들을 인도하기 위해선 우선 우리들, 목회자가 먼저 이러한 삶이 체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사'가 아닌 '증인'으로 강단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학문을 강의하는 교사는 검증된 지식을 말하는 것이지만 체험을 말하는 증인, 즉 목회자는 과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검증이 필요없는 증거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더 이상의 교사나 학자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기독교라는 범주 안에서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한 성경 66권을 이제는 더 이상 쪼개고 파헤칠 필요가 없다. 밀크를 분석만 하고 있다면 영양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마시는 우유에 에너지가 있듯이, 성경 전체를 영혼 깊숙히 받아들일 때만 우리의 영혼이 풍요로워지고 힘이 솟는 것이다. 율법적으로 분석하고 쪼개어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되는 식의 신학적 메시지가 아닌,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 곧 복음 자체이신 성자 하나님, 그러나 이 땅에 오시기 전 영광보좌에 앉으셨던 성부 하나님, 이제는 영을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의 삶 가운데 가르치고 인도하며 생각나게 하시는 영원한 우리의 완전한 랍비,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적 증거로 가득한 메시지이어야만 우리들 목회자가 살고 성도들이 살며 한국교회가 살고 이 민족과 세계가 살아날 수 있다.
일전에 우리교회를 방문한 중국교포 L집사님의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이야기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집사의 신분으로(?) 전도하는 데 있어 어떤 목회자 못지 않게 활약하시는 그 분이 겸손한 모습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설교는 쉬운 거야요. 상가집에 가서도 그리스도, 혼인집에 가서도 그리스도, 돌집에 가서도 그리스도만 말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스도, 이 위대한 이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고 우리의 삶을 성령충만함으로 이끌어갈 비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7.10.
[대형교회 유명목사의 숨겨진 이야기]ㅡ목사의 삶에 대하여
영적세계전문가

아멘!
답글삭제율법을 뛰어넘는 완전한 자유 속에 올바른 사명을 회복하여 성령충만한 삶을 증거하겠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