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3ㅣ영적 지도자의 삶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일전에 동료 목회자들과 식사를 나누던 자리에서 목사들의 전도가 실제적으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어떤 이는 90%가 전도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고, 어떤 동료는 거의 99%에 가까울 거라는 비관론을 펴기도 했다.


전도에 대한 화제에서 대부분 도전을 받았는지 다들 심각하였는데 그 암울함(?)을 깨고 들려 준 조크에 모두 다 웃었다. "목사가 새끼 낳나? 양이 새끼를 쳐야지!" 그렇지, 양이 새끼 낳지, 목사가 새끼 낳을 수 있나? 지당하신 말씀인 것 같지만 사실은 틀린 이야기이다. 심지어 어떤 부흥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전도 못하면 자연증가를 위해 애라도 쑥쑥 낳으라는 이상한 논리로 사명감을 회피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성도가 자꾸만 줄어든다는 개탄의 소리가 일각에서 상당히 뚜렷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들려온다. 그도 그럴 것이 전도하는 열심보다는 내 교회 내 성도 지키기에 급급한 형편인데다, 비온 끝에 일어나는 하루살이 떼마냥 우~ 하고 일어나는 역술인 무속인, 각종 신비적인 이단사설을 막을 대책 하나 제대로 세워놓지 못한 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잘 믿던 성도 하나가 흐지부지 교회생활 하다가 절에 간다든지 역술인에 빠지는 것은 그다지 흥분하지 않으면서(실제적으로 역술인 무속인의 90%이상이 교회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바로 옆 교회에 이런 저런 이유로 출석하게 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공격한다.

언젠가 우리 교회 청년의 어머님이 K병원에 상당히 오랜 기간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여러 성도들이 번갈아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던 차에 바로 옆 침대에 누워계시던 분을 전도하여 함께 예배 드리게 되었었다. 그 분은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다가 엄청난 집안의 재앙으로 몸져 눕게 되자 집에서 가까운 큰 교회에 몇 번 출석했던 차였다. 교회에 가 보아도 여전히 마음병은 그대로이고 육신도 연약하여 그저 가다 말다 하던, 소위 왔다갔다 신자였다.

그런데 몇 번의 만남과 성경공부, 그리고 함께 나눈 짧은 예배를 통해 이 분이 마음의 위로와 평강을 얻고 우리 교회에서 두 세 번 출석하게 되었다. 그러자 거의 방관상태에 있었던 그 교회에서 갑자기 치밀한 심방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매일 심방을 번갈아 오던 여전도사 및 성도들은 말씀의 기역자도 모르는 그 분을 가운데 두고 삥 둘러앉아 "교인 뺏아가는 악한 사단 마귀는 예수이름으로 물러날지어다"라고 호통을 쳤다니, 그렇지 않아도 인간사 사람 등살에 지쳐있었던 데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던 그 분은 , 더구나 사단이 뭔지도 모르지만 그저 기분 나쁜 존재일 거라는 막연한 지식은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등을 두드려대며 사단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니 기가 막힐 수밖에···. 더욱 반발심이 생긴 그 분이 결국 "저리 큰 교회가 우째 저러노" 탄식하시며 그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120년의 한국기독교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작금의 정체상태 내지는 감소현상을 아프지만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성도들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이며, 작게는 목회자 하나 하나의 목회적 양심에 호소할 문제이다. 물론 수천의, 수만의 성도를 가진 목회자가 언제 전도를 다닐 수 있겠는가. 있는 성도 감싸고 다스려 지키기도 힘들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진정 성령충만한 삶은 무엇일까? 작고 소외된 곳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영혼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삶. 가는 곳마다 그저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제자를 찾아 세우려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한 영혼 한 영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삶. 종교적인 기준이나 윤리, 율법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완전한 복음 안에서 그 구원의 감격에 날마다 환호하며 가는 곳마다, 보여지는 영혼들마다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이 시대를 살리고 짊어질 영혼을 찾아 제자 세우려는 노력이 깃든 삶. 이것이야말로 성령충만한 삶이 아닐까?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제자를 찾아 세우는 일로부터 당신의 사역을 준비하셨다. 결국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소원인, 우리로 하여금 땅끝까지 증인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제자를 뽑아 세우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삶으로 예수님의 뒤를 좇을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요, 또한 우리와 같은 제자를 키우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의 제자의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자의 개념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었다.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다 함은 이미 목숨을 내놓았다는 선언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생명을 건 삶. 복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내놓은 삶이 바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충만함을 입은 120문도(門徒)의 삶이었다! 그들은 함께 동거하며 떡을 떼었다. 이는 개인의 이기심이나 계산, 동기가 전혀 배제된 순종적 삶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배경에서, 그리고 체험에서 비롯한 인생관을 말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장 하시고자 하는 말을 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에서의 제자의 삶은 바로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이어야 하며 특별히 후대를 맡아 기르기를 부탁받은 목회자의 삶이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로서 매일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을 누려야 함이 가장 선행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길을 잃은 사람들, 인생문제의 미로에서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영혼들에게 바른 답을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그 길을 기도로 발견하고 기도로 응답의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체험해야만 확신있게 그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오늘 날의 점술, 역술, 미신, 우상의 문제에 당당히 앞서 싸워야 한다. 성령을 힘입은 자로서 악령, 즉 사단의 궤계에 빠진 자들을 건져내고, 그들에게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담대함과 당당함은 영적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영권이라 생각한다.

이제 큼지막한 책상 앞에 앉아 성도들이 들고 나는 수만 헤아리고 있는 소극적 목회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내 교회에 대한 이기심을 버리고 한국교회 내지는 세계교회의 앞날을 내다보며 거시적인 안목으로 이 타락해 가는 영적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목회자가 기도하지 않고 인본주의와 편리주의와 지식주의에 빠져있을 때 이 세상에서 유리하던 양 한 마리는 악한 풍습에 물들게 하는 사단의 궤계에 빠져 영원한 멸망의 길로 향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만큼, 지혜와 지식의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그리고 영으로 함께하시며 영원한 임마누엘로 오늘도 초대교회와 다름없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인정하는 만큼 한국교회가 살고 세계교회가 살며 곳곳에서 일어나는 미신과 우상이 타파되고 갈 길을 몰라 헤매던 오늘날의 어린양들이 진정한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성령충만한 삶. 이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로 세워진 바된 목회자들이 시급히 누려야 할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렇듯 성령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지도자적 위치에 서야 하는 목회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살펴봄 직하다. 어쩌면 이 문제는 곧 나의 문제요, 한국교회 목회자 전체가 각성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주된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거의 매일 예배를 집전하는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즉 아벨의 제사를 통해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이는 범죄현장에서 가죽옷을 지어입히심으로써 어린 희생양의 죽음을 예표하시고 이 땅에 흠없는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의 보혈로 말미암아 사죄의 확신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 언약을 확증하시고 그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홍해의 기적을 베푸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예배,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예배로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시켜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강단에서는 매 예배마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십자가의 능력, 그리스도의 비밀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양들의 상태. 즉 그들의 영적 상태를 읽어내고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 만큼 영적 비밀을 알고 영안이 열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것만이 어둠과 캄캄함으로 싸여진 이 악한 세대에서 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 자신이 누리는 그리스도의 비밀과 영적인 비밀을 통해서 매일 기도응답의 기쁨을 누리며, 이 기쁨을 양들에게 나누어줄 때 비로소 그들은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되어지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삶. 특별히 영적인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목회자, 우리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누려야 할 삶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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