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4ㅣ청소년 문제, 영적 치료가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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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
청소년이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면서도 왜 그들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채 그저 똑같은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청소년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데 사회가 잘못 나가서 그렇다느니, 무분별한 서양문명이 이 사회에 치고 들어와서 그렇다느니, 그러니 어른들이 각성해야 된다느니, 확실하게 매를 들어 쳐야 한다느니 하는 정도의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들뿐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청소년들의 소위 '공안정국'이라 한다 하던가. 어찌됐든 문제의 겉을 맴도는 무성한 말들이 오갈 뿐이지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종전의 시대와는 달리 그 문제의 질이 더욱 패역해지고 상상을 초월한 악한 것으로 치닫고 있음을 우려하는 정도의 내용이랄까, 그뿐이다.
하긴 청소년 문제는 참으로 오랜 세월 어른들의 골칫거리였던 것 같다. 로마시대의 한 문헌에도 타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맹렬히 비난하고 걱정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 신문이라는 것이 발간되면서 취미 삼아 빠짐없이 신문을 모아온 분의 빛바랜 신문 가운데는, 약 30~40년 전에 사회면을 장식한 헤드라인(Head Line)이 우리의 시선을 흥미로 이끌어 내는 기사가 있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청소년들, 이대로 안 된다"였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시대의 전후를 막론하고 이 사회의 문제라고 지적되는 청소년의 문제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현상적인 문제는 이제 이대로 족하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이것은 순전히 영적인 문제이다!"
아마 말 깨나 하는 사회학자들은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적인 해석을 무시하고는 절대로 청소년 문제의 해결책은 없다. 역사가 말하지 않는가? 로마 시대부터(그 이전부터인지도 모르겠지만) 있어 왔던 청소년 문제가, 그리고 우리의 순진한(?) 어른들이 존재했던 40~50년 전의 청소년 문제가 왜 오늘날까지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청소년 문제의 진짜 이유를 영적인 문제라고 주장한 이상 그 답은 자명하다. 성령충만한 삶, 이것이 바로 청소년 문제의 해결책인 것이다.
일전에 여름 성경학교를 개최하였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련의 프로그램을 벗어나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합숙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상담하고 말씀으로 해답을 주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상기시키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대부분이 깊은 마음 속에 잠재된 분노와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어린이가 뭐 그리 문제가 많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실제적으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야뇨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학교에 가면 끊임없이 괴롭히는 '어떤 녀석' 때문에 학교가기 싫다는 억눌림이 잠재되어 있기도 했으며, 이미 현상들에 여실히 드러나 툭하면 치고 받고 싸우는 어린이도 있었다. 이들이 이런 문제를 안고 그대로 자라 청소년이 될 것이고 당연히 청소년 문제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될 것임은 뻔한 순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름 성경학교를 통해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그렇게도 타이르고 위로하고 안심시키고, 때때로 혼내주어도 안 고쳐졌던 야뇨증이 말끔히 치료됐다는 아이와 어머니의 간증을 들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 되어 매사에 흔들리고, 집중 못하고, 산만하던 아이가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는 얘기도 더불어 듣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훈계와 도덕교육과 사랑의 매로 안 되었던 그들의 문제, 어떤 면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 무엇으로 해결되었는지 주목해 볼 일이다.
이틀 밤의 상담과 말씀, 이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된 것이다. 물론 수많은 아이들을 상대로 한 어마어마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그 작은 수의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줄기 빛 같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만일 이 일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그들의 방황은 멈추게 될 성싶다. 결국 그들을 안정시키고 치료해 준 말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 영혼이 성령충만해졌을 때 그들은 변했고, 앞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소년원 사역을 통해 얻은 경험을 말하면서 이 지면을 통해 강조했듯이 윤리와 율법과 도덕으로는 그들에게 해답을 줄 수 없으며 그들의 유리하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눈초리 내려깔고 팔짱끼고 앉아서 '너나 잘해 보라'는 식으로 교사들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강퍅한 마음은 오직 예수, 십자가에서 자신들을 위해 겸허하게 돌아가신 그 분의 사랑이 아니고는 열어제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편, 이 사랑을 말하게 전에 선행되고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영적인 문제를 짚어주는 것이었다. 우등생이 되고 싶고 모범생이 되고 싶고 잘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 끊임없이 자신들을 방황과 유혹의 길로 이끌어내는 어떤 존재, 보이지도 않고 잘 알 수도 없지만 마음 가운데, 생각 가운데 자신을 조정하는 어떤 존재에 대한 설명, 그 설명이 따르지 않고는 그들은 그저 죄인이라는 의식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창세기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떠나서 온갖 수고와 불안과 염려와 불행, 그리고 나아가서는 죄와 저주와 멸망, 사망 가운데로 인생을 이끌어가는 그 사탄의 존재에 대해 그들의 의식을 깨워 주지 않고는 불가능했다는 얘기이다.
몇 주 전에, 청소년들의 '해방구'라고 할 수 있는 노원역과 수유역에서 직접 청소년들을 만나 상담하고 그들의 실태를 영상으로 담는 비디오 작업 가운데 내레이션을 맡았던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만난 소위 문제 청소년들의 노는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커피숍에서 노래방으로, 호프집에서 한 잔 걸치고(이것도 돈 많은 축들만) 락카페로, 락카페에서 몸부림치는 춤을 한바탕 추어대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만화방이나 비디오 방으로. 그렇게 하루를 노는 데는 너무나 많은 경비가 필요하니까 가방은 집어던지고 소위 돈벌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돈벌이도 만만치 않고 힘들고 수고스러우면 자연스레 계획하는 것이 훔치기, 빼앗기 등의 탈선으로 그 행보가 전개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미래가 그저 건달일 거라는 확실한 답을 내려놓고 소망없이 시간 시간을 재미로만 때우려는 청소년들의 의식이 소위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나무라지만 않고 좀더 심도있게 접근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적으로 S라는 아이는 복음을 듣고 싶어했고 자신의 이런 방황을 멈추게 하는 어떤 길이 있다면 따르겠다고 했다. 손목의 동맥을 수차례 끊었던 십대 후반의 J는 자신이 그렇게 어렵고, 외롭고, 힘들었을 때 누군가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다면 믿었을 거라고 말했으며 이렇게까지 자신이 타락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 청소년들의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아내의 보고는 목회자로서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점검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답도 없이 수십 년 논의된 청소년 문제의 해결은 그들을 말씀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데 있다. 상습적인 본드흡입과 폭력, 수차례에 걸친 자살소동으로 골칫거리였던 P라는 아이는 이제 복음 안에서 거듭나 이렇게 간증하고 있다.
"끊임없이 저의 내면에서 자살을 충동질하는 그 어떤 존재가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제는 알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었던 그 충동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성령충만한 삶. 청소년들의 삶 가운데 성령충만함이 있기 위해서는 우선 어른들의 삶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우리들'이라는 구역을 확실히 선 그어 놓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어른들'을 핑계대고 공격하는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선 우리 '어른들'이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 꿇으며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길 때 '어른들'과 '우리들'의 사이가 좁혀질 수 있고 그 틈이 메워질 때 이 땅에서 청소년 문제는 그 심각성이 덜어질 것이다.
단지 청소년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문제들은 우선 근본적인 영적 치료가 선행되어지지 않고는 뿌리를 뽑아내는 해결이 불가능 하다. 이 악한 세대, 패역한 문화,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과 대적해서 싸울 수 있는 힘은 오직 성령을 힘입을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는 윤리의식(사실 바르게 살지도 못하면서)과 도덕적인 징계는 문제 위에 문제를 얹고 분노 위에 분노를 얹어서 이 사회를 더욱 혼란지경으로 몰아갈 뿐이다. 오직 사회 구성원 하나 하나가, 아니 우리 천만 명을 자랑한다는 기독교인 하나 하나가 영적인 비밀을 바르게 깨달아 알고 십자가의 도만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악한 영의 궤계를 쳐부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 가운데 거할 때 우리의 삶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될 것이며, 이러한 삶의 태도가 우리의 후대들에게 계승되어질 때 이 사회에서 더 이상의 청소년 문제는 심각하게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7.09.
[07중독시대를 끝내는 기적의선포메세지ㅣ앉으나서나 그리스도]ㅡ누구든지 구원을받는 예수그리스도, 그이름의권세ㅣ사도행전2장14-21절ㅣ김서권목사님ㅣ예수사랑교회 영적세계전문가

아멘!
답글삭제후대와 사회를 살리는 길은 성령충만함 뿐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가능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깨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의 자세로, 미래를 준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로 오늘을 도전하겠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