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6ㅣ복음의 일꾼으로 흩어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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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
한때, 공동체 목회에 심취(?)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공동체 정신을 부인하거나 잃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무조건 어려운 이웃이나 소외된 이웃을 집안으로 데려다가 먹이고 입혀야 된다는 일념 하나로 마음 고생 지질이 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진정 교회가 해야 할 진짜 사명을 잊어버리고 그저 육신적인 위로와 평안함만을 제공하려 했던 나의 초기 목회는,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방향을 잃고 있었다. 복음이 아닌 윤리와 율법, 도덕만을 성도들에게 강조하고 나 또한 잘 되지도 않는 윤리적 틀 속에서 참된 자유를 잃고 있었다는 말이다.
일전에 천주교에서 개종한 가까운 동기 목회자로부터 중요한 간증을 들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신앙을 갖도록 권유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천주교를 가도록 권유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자기 자신이 수도사가 되려고 맘먹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시련을 겪고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성경의 바른 깨달음을 체험하고는 신학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성당에 다니고 있는 친구가 문제였다. 자신이 개종하게 된 동기와 체험을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간증하고는 가까스로 그 친구를 천주교에서 빼내었다(?). 그런데 가까운 교회를 몇 달 다니던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네 말이라면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도 믿을 정도다. 네 말을 믿고 성당에도 다녔고 네 권유대로 교회를 옮겼지. 그런데 교회든 성당이든 윤리와 도덕만 강조한다면 다를 것도 없는데, 이 땅에 꼭 교회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동기 목회자는 이 질문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윤리와 도덕은 교회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르치는 학교도, 학원도, 교수도 있으니,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요지였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나에게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교회가 일반 기업체와 다를 것이 뭐 있는가. 교회조직을 보면 완벽한 회사조직과 똑같더라."
교회에 몇 달 다니지도 않은 초신자가 찍어낸 이 질문이야말로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영적인 문제를 전혀 짚어주지 못하는 이 시대의 강단 설교는 현대적 바리새인과 율법사만을 길러낼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진짜 바리새인도 못 만들었다는 데 있다.
아무리 윤리와 도덕을 강조해도 원래 인간은 완벽하게 의인으로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고,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듯이 원래 행악의 종자인 우리는 의롭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았던가?
성령충만한 삶, 이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며 오직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 삶과 영혼의 중심에 모셔들일 때만 성령충만한 삶은 가능한 것이다. 행악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영혼이 오직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을 때만 포도열매, 즉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의 열매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강단에서 윤리와 도덕, 인내와 봉사만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자기 열심과 감정의 위로만 강조된 나머지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은 병폐가 있었던가.
이것도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해서 목회자간에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백구두 신고 흰색 넥타이 메고 삐까번쩍 멋있게 생긴 부흥사의 모목사님께서는 일 년이면 수백 통의 연애편지(?)가 날아든다고 한다.
정신적인 허무와 방황, 혼돈 상태에서 빠진 여성도들이 강단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감정의 위로와 다독거림에 현혹(?)되어 마치 목회자를 연인 대하듯이 야릇한 감정을 품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해결자인양 착각하여, 몸 주고, 마음 주고, 돈 주고, 패가망신할 뿐 아니라 교회를 풍비박산시킨 아픈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쉬쉬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진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자신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위장된 겉모습 속에서 얼마나 마음으로, 생각으로 하나님을 떠나 살았는가. 이제는 영적인 비밀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성도들 또한 자신들을 끊임없이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에 빠뜨리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답은 창세기 1장부터 밝히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기 이전의 상태는 오직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은 가운데 있었다. 이 때 여호와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다. 이 때 어두움은 걷히고 빛이 임하였으며,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우리의 영혼에 찾아드는 공허와 혼돈은 윤리나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로 자제는 시킬 수 있다. 억제된 감정 속에서 위장된 선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하게 성령충만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이 내제된 감정과 공허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지금은 영으로 우리와 영원한 임마누엘로 함께하시는 성령만이 완벽한 치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어두움을 깨뜨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이로써 우리는 완벽하게 죄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연약한 질그릇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이 의로운 삶을, 오직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 속에 담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던 나의 초기 목회는 방향을 잃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윤리와 도덕만을 강조하여 방 한 칸뿐인 사택에서 먹이고 재웠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그 능력으로 인한 진정한 사랑을 생생하게 가르치지도 못했고(안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분열과 오해를 낳게 하는, 영적인 세력인 사단의 그 더러운 실체를 실제적으로 가르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모으기만 했지 흩어질 줄을 몰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커졌다.
초대교회는 서로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떡을 떼며 완벽한 교제를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였다. 이 시대에 이러한 모습은 너무나도 중요하고도 필요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교회의 지향을 위해서 나 또한 이러한 목회를 비전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잘 나가던 초대교회에 분열이 생겼다. 드디어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불만이 야기된 사건이었다. 선행과 구제가, 윤리와 율법이 강조되었던 '모여있는 교회'에 분열이 생긴 것이었다.
나 또한 실제적으로 이런 경험을 하였고, 이로써 주위 몇 사람이 상처도 입었다. 가장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은 내 옆에서 인내만 강조당했던 내 아내가 아닌가 싶다. 시쳇말로 정주면 떠나간다고, 안간힘을 써서 사랑을 베풀면 어느 날 말도 없이 훌쩍 가버린다거나, 자신에게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불평하기도 하고, 인간적인 사랑만을 기대하기도 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을 착각한 신자들 때문이었다.
그 때는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선명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시행착오를 통한 연단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지혜를 나에게 주셨다. 주님은 '모여있는 교회'가 아닌 '흩어지는 교회'를 원하셨던 것이다.
같이 모여있기만 하는 초대교회에게 하나님은 구제문제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시더니, 결국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핍박을 가하셨다. 이로써 모여있던 성도들은 각지로 흩어졌고 그 결과 이방인을 선교하게 된 최초의 선교교회인 '안디옥교회'가 탄생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가서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잊고 있었던 초대교회를 향한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때 내가 이 비밀을 알았더라면 공동체 목회에 성공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많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고, 이제는 참다운 회심을 통하여 진정한 전도인이 된 영혼들도 있다. 단지 이 깨달음이 내 목회현장에서 그 때 바로 적용되었더라면 힘든 세월(?)이 없었을 것이고, 영적인 낭비 즉 쓸모없는 소모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성령충만한 삶,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선 모여져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배우며 아울러 영적인 비밀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해와 불신을 가져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한 세력, 창세기로부터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겨나게 했던 그 사단의 존재를 가르쳐야 한다. 이 영적 비밀을 놓쳐버릴 때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참으로 무익한 삶 속에서 혼돈과 어둠을 초래할 뿐이다.
이 영적 비밀은 중심에 두고 우리는 비로소 흩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 땅끝까지 흩어져야 한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제자 삼으며,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귀신들이 떠나가고 큰 기쁨이 임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어둠이 걷혀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흩어져 복음의 진정한 일꾼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며,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7.11.
[#01 자유로운 시인의 노래ㅣ나에게 묻다]
영적세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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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답글삭제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지금은 영으로 우리와 영원한 임마누엘로 함께하시는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완벽한 치유를 누리게 하시고, 사탄을 밟는 작은 싸움 속에서 가서 제자 삼으라는 사명이 성취되도록 성령충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