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8ㅣ'현재완료'된 증거를 가진 삶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현재완료'된 증거를 가진 삶"


새해가 오면 흔히들 '희망찬 새날'을 말하곤 한다. 하긴 지난 한해가 온통 잿빛소식으로 가득했으니 '희망'을 걸어보지 않을 수 없지만 세상 사람들의 희망의 개념과 복음 안에서의 희망의 개념은 근본적인 차이가, 그 결국에 있어서 상당하다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희망은 위기에서 비롯된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위기를 맞이할 때 소망을 잃어버리거나 낙심하기가 일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람들은 위기를 오히려 축복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곤 한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이 그러했으며 모세가 그랬고 신약에 이르러 바울이 그리하였다. 어찌됐든 지난 한 해는 우리 나라가 깨진 항아리에 비유될 만큼 경제적 위기를 맞아서 국가적 부도를 내기에 이르렀고 경제적 신탁통치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해 말 과열된 경선 분위기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해 내는 데 있어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그 향방을 잃어버리는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작년 한 해 우리 나라는 인구비례당 자살 2위 국가가 되고 마는 슬픈 현실을 낳고 말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96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자살 건수는 8천 6백 32명으로 95년에 비해 11.9%나 증가했다고 한다. 하루에 약 24명, 한 시간에 한 명씩 자살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중에서 중소기업 사장들의 자살은 하루에 한 명씩 행하여졌다는 보고가 우리에게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경우 8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명존중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전체국민의 47.5%가 자살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자살률이 급증한다고 볼 때 지난해의 사회적 불안 심리가 어떠하였는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진단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왜 자살 이야기만 해야 하는지 필자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반성하여 새롭게 거듭나자는 이야기를 하자는 의도이다.


우리는 몇 년 전만 해도 1,200만의 기독신자를 자랑하였다. 하지만 어떤 통계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인은 이제 8백만이 되었다는 아픈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왜 기독교인은 감소하고 있는가. 이렇듯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치적으로 혼란하여 민족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현실 가운데 기독교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미약했길래 국가적 위기 속에서 신선하고 힘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어 있다는 말인가. 하물며 장로 대통령은 왜,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여 민족적인 이 위기에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말하지 못했던가. 


이 땅에는 공부를 많이 한 학자도 많고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는 훌륭한 정치가도 많으며 돈 버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제인도 많이 있는데 왜 그토록 우리 민족은 위기 앞에서 방황해야 했던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됐든 우리의 결론은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이전에 일천만 성도를 자랑하는 기독교인들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과 밭에까지 복을 내리셨다. 만일 이 나라에 '요셉 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듯 위기에 직면하는 어려움은 피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깨어 있는 한 사람을 이 시대는 요구한다. 몰락해 가는 경제 현실 속에서 그 산업현장을 살릴 수 있는 요셉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경제는 '경쟁자 없는' 큰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직면한 기근 속에서 요셉은 경쟁자 없는 쌀장사를 함으로써 애굽을 건져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파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소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달은 한 사람의 정치자 '요셉'이 탄생한다면 이 시대는 더 이상 권력 다틈으로 혼란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잃어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구약의 역대 왕들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몰락하거나 노예가 되었던 것처럼 이 시대의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정치가들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잡고,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언약을 붙들고 나아가는 한 사람 요셉이 있다면 이 시대는 희망이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민족을 굶주림의 위기에서 건져낸 요셉 한 사람, 이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민족은 동토의 땅에서 기아로 굶어가는 북한의 동포들을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K성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내의 권유로 이제 막 교회에 나오게 된 그는 S그룹에서 일하는 전도 유망한 젊은이이다. 이제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 분인지 알게 된 그는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만끽(?)하고 있는 성도이다. 그런 그가 오래도록 한 직장, 한 부서에서 일한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퇴근 길에 동행했던 차에 그는 요즘 나가게 된 우리 교회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며 하나님을 믿으면 어떻겠냐고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 동료는 자기는 모태신앙이며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교사로서 성가대원으로서 활발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노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칠 년 남짓 한 부서, 한 직장에서 일했지만 그 동료로부터 교회에 나가 보라는 권유나 하나님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던 K성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래도 되는 거냐며 오히려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K성도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일천만 성도들이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도무지 영향력을 비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성령충만한 삶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있는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을 내는 것이다. 요셉은 세 명의 의붓 어머니와 자신을 시기 질투하는 열 명의 의붓 형제가 있는, 정신적으로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굳건히 붙잡고 담대하며 의연하였다. 그는 형들이 밀어넣은 구덩이 속에서도 반항하거나 몸부림 치지 않았다. 그 구덩이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을 통해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는 현장 속에서도 그는 반항하지 않았다. 애굽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순종하였던 것이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일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유감없이 발산하였다. 그래서 그의 주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형통한 자'라고 감탄하였고 요셉이 있는 그의 집은 밭에까지 복을 받았다. 그런 요셉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은 아내의 참소를 믿고 요셉을 감옥에 던져 넣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감옥 속에서 오히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써 술장관과 떡장관으로부터 정치력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고, 경제적 위기와 민족적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함으로서 국가를 초월한 국무총리가 되는 것이다. 요셉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훌륭한 정치가, 탁월한 경제인, 신학이 아닌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만방에 흩날리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민족적 지도자가 된 것이다.


성령충만한 삶!


천만을 자랑하는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가정에서, 산업현장에서, 직장에서 요셉 한 사람과 같이 영향력을 미친다면 이 온 땅은 성령충만함으로 가득 넘쳐흐를 것이다.


일 전에 영국에 다녀온 아내의 이야기로는 영국교회 현실이야 말로 '몰락해 가는 세도가의 모습'과 흡사했다고 말하였다.


껍데기만 휘황찬란하고 그 내면은 이끼 끼고 무너져가는 영국교회처럼 이 나라의 교회가 겉으로만 그 크기와 아름다움을 자랑할 뿐 그 내면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어간다면 우리 나라의 교회도 유럽의 교회들처럼 무너지고 유리하며 큰 교회가 호텔로 변하고 음식점으로 변하는 현실을 맞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새해의 태양이 떠올랐다.


이 시대에 우리의 현실 속에서 영위되어야할 그리스도인들의 성령충만한 삶은 무엇인가. 요셉 한 사람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과 언약을 붙들고 어떠한 고난이나 위기에도 흔들림없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형통함'을 보여 주는, 그러한 삶 가운데 있는 것이 성령충만한 삶이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 나라의 경제적 위기에서, 정치적인 위기에서 그리고 북한이 겪고 있는 민족적 위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의연히 일어나 지혜롭게 이 위기를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라 소원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현실은 소망으로 밝아 올 것이다. 천만 성도가 머무르는 구석구석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며 증인될 때 주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명확히 보여 주는 삶의 증거들을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증인은 증거를 가진 자이다. 만일 있지도 않은 거짓 증거를 말한다면 그는 위증죄에 걸려 법의 심판 아래 놓여지고 만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증거는,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미 '현재완료'된 확실한 증거이다. 이 증거를 가진 증인으로서 땅끝까지 나아갈 때 우리는 오늘날의 '요셉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날에 비로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구가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8.01.


2025.2.9 [주일1부: 창세기 강해] - (통역제거) "요셉을 위하여 만사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 Rev.김서권
예수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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