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 vol.10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장관과의 트윗, 그 소통의 가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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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ature in Interview 말씀에서 HIM을 얻다 - 기독교 | 글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목사)

"어쨌든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싶어 하고 상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확한 소통 방식을 모르는데 있다. 통하고 싶지만 늘 불통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소통 방식을 여러 가지로 모색한다."


장관과의 트윗, 그 소통의 가치에 대하여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100년 후 이루어질 10가지’라는 기사를 일간지에서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는 ‘생각 송수신 장치’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상대편에게 전달된 생각이 인터넷에 자동 저장될 것이란 예측이다. 소통의 문제는 미래까지 계속될 인류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들 모두는 소통에 목마르다. 그래서 소통은 시대적 요구이자, 과제가 되었다.


소통이 시대적 요구이자 과제가 된 세상

카키색 청춘들의 고민이 여러 가지 슬픈 소식이 되어 뉴스로 전해질 때 마다 저 멀리 손닿을 수 없는 예외적 공간에서, 어쩌면 자신에게 어느 날 일어날 지도 모르는 불행한 일들을 상상하느라, 금쪽같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뒤숭숭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답답한 그 상황에 김관진 국방장관의 트위터 소통은, 자칫 어둡고 숨 막히게 비추어 질 수 있는 병영생활에 한 줄기 빛처럼 눈이 뜨이게 하고, 동굴천장에서 떨어지는 신선한 물방울처럼 숨통 트이게 한다.

물론 상하관계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이 뚜렷해야 하는 군 문화의 특성상,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방장관에게 일개 병사가 트위터로 직언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군기가 시퍼렇던 권위주의 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장勇壯으로서의 아우라를 지닌 국방상황에서 ‘가까운 삼촌’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소통의 문을 여셨으니… 오호라, ‘창조주 하나님과의 소통'이야말로 피조물로서 누리는 최고의 행복임을 뼈 속까지 절감하는 목사로서는, 이러저러한 논쟁과 상관없이 두 손 들어 경하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통으로부터 오는 사귐은 문제 해결의 정점에 이른다.

휴가통제로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는 전선지역 일병의 트윗에 대하여, 오히려 그의 용기를 칭찬하고 개선점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장관의 답변이, 해당 사단장으로 하여금 일선 장병과의 소통을 강화하게 하는 순기능을 가져왔다고 하니 병사의 입장에서 참 좋은 일이다. 그래서 규율로는 용맹하게, 마음으로는 따뜻하게 나아가려는 국방장관의 노력에 진심어린 기도로 힘을 더하고 싶다.

소통의 문제는 미래까지 계속될 인류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100년 후 이루어질 10가지’라는 기사를 모 일간지에서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는 ‘생각 송수신 장치’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상대편에게 전달된 생각이 인터넷에 자동 저장된다고 하니, 가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혼란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긴 오대양 육대주를 하나로 아우르는 지금의 문명 속도를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소통의 달인’ 진정 누구인가?

요즘 대세인 SNS(Social Network Service)는 한 지붕 밑에 살고 있는 가족과는 불통이어도 지구 반대편 누군가와는 소통할 수 있다. 참 미묘한 기능이다.

다른 한 편, 디지털 방식이 주는 기계적 소통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소통방식을 모색한다. 그래서 요즘 뜨고 있는 소통의 트렌드는 '콘서트'라는 단어에 1.0 2.0 3.0 같은 숫자를 붙인 소통방식이다.

청춘들의 행보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 고민해결 콘서트 사이트에 접속하여 그들의 소통을 지켜보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니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는 가운데, '더 이상의 아픔은 못 참겠다'며 한 청춘이 일어나 인생의 도를 찾아 정진하시는 덕망 높은 분에게 질문했다. 

그 내용인 즉, 안간힘을 써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의 조직사회 속에서 각종 술수와 인격적 수모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취지였다. 행여 그 회사 상사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괘씸죄에 걸려 당장 해고당할 만한 고백이었으니, 아마도 질문 당사자는 그 대답이 절실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자신과 회사와의 성공적인 소통법을 묻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의 첫마디는 이랬다.


"호강에 받혀 요강 깨는군요."

직장 없는 백수가 들으면 흥분할 일이라는 요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소통 콘서트가 아니라 불통 콘서트다.

장관님의 답변이 일련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도 개선이라는 분명한 열매의 성과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가치다. 남편 문제로 죽을 지경이라는데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 통하는 거다.

직장에서 일하는 자체가 문제라는데 실업자 생각해서 참으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해는 된다. 생각의 전환, 매사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라는 답일 테니까. 그런데 누가 모르는가. 그 생각의 전환이 안 돼서 미치겠다는데···.

진정한 소통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에 ‘사실적으로’ 설 때부터 시작된다. ‘남이 염병보다 지 코뿔이 심각하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는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가르치려들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면 모든 걸 다 겪어봐야 상대방의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정확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소통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면 그 누가 자격이 있단 말이지? 온 우주 공간에 푸른 지구 하나 띄우시고 한 손으로 돌릴 만큼 지혜와 권세가 뛰어나지만 죄 없이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 보좌에 거할 만큼 부요하나 머리 둘 곳도 없을 만큼 가난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지만 주리고 목마르며, 군중의 환호 속에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지만 채찍에 맞고 침 뱉음을 당하며 배신당하고 조롱당하신 분. 온 인류가 갖는 인생의 모든 고뇌와 질고와 수고를 친히 체휼하신 분. 깨어지고 벌어지고 망가지고 혼란하고 번잡하고 갈등하고 수근대고 오해하고 공허하고 어둡고 답답하고 분노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불통을 담당하여 소통의 길이 되어 주신 분···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시며, 진리 되시고,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요한복음 14장 6절-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평화와 행복의 기쁨을

누군가 말했다. 인간이 태어난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1년에 4천만 번이나 뛰는 심장과 6만 마일을 여행하는 혈액 때문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걸을 수 있는 소통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비록 개나 돼지의 심장이 뛰고 혈액이 돈다할지라도, 훌륭한 피조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진리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 안에 있는 우리는 운명 사주팔자, 업보, 원죄라는 시나리오로부터 자유롭다. 예컨대 세계적 거부巨富일지라도 사랑하는 자녀가 자살해 죽는다면 슬픈 운명이다. 대기업을 이룰 만큼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늘 두려움과 염려에 시달려 귀신 들린 무속인을 끼고 다니다가 어느날 감옥에 가야 한다면 이 또한 불행한 운명이다. 머리가 뛰어나게 좋아서 일류대학 교수가 되었더라도 마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이 또한 기구한 운명이다.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소통하며 이 땅을 다스리고 충만하며 복을 누리는 존재였음을. 그래서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의 소통으로부터 오는 평화와 행복과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하나님과 동산을 거니는 그 아름다움이여, 게다가 아담과 하와의 그 완벽한 소통의 사랑스러움을 보라.

‘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이보다 더 황홀한 부부의 소통이 있을까.

그러나 무당 속에 입신하여 작두 타게 하고, 점쟁이 속에 들어가 거짓말로 속이게 하며, 정신병자 속에 빙의하여 돌게 만드는 존재, 인간의 삶을 훔치고 도적질하는 자, 가인 속에 들어가 살인 충동을 일으키고,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를 배신하고 자살하게 했으며, 유대인 바리새인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위선 떨며 오히려 도둑놈은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게 하는 악랄한 존재··· 하나님의 대적자, 이간질자, 거짓말쟁이, 살인자, 욕심쟁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종교의 바벨탑, 인본주의 황금만능주의 바벨탑을 높이높이 쌓아놓고 결국은 멸망과 재앙으로 몰고 가는 어둠의 존재.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 사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여 소통을 막았지만, 그 불통으로부터 오는 인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이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신 만왕의 왕, 죄의 문제를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전하게 해결하신 참 제사장, 하나님과 만나는 길을 여신 참 선지자라는 세 직분을 기름 부어 받으심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자녀가 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진짜 멋진 소통이 시작된다. 국방장관님과의 소통은 군 생활을 평안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소통은 인생 전체를 행복하게 한다. www.jxlovechurch.com





[소통기도냐, 불통기도냐?]ㅡ하나님의 언어로 기도하라

영적세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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