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 vol.8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샬리트 상병 구하기
납치된 청년병사 1명을 1,027명과 바꾼 ‘어리석은 계산법’
‘샬리트 상병 구하기’
팔레스타인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청년병사, ‘샬리트 상병’ 구하기는 악명 높은 하마스와의 긴 협상 끝에 1027명의 팔레스타인 재소자와 맞교환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마침내 샬리트는 5년여의 억류 끝에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민의 자유는 국력에 비례한다는 루소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작지만 강한 나라, 단 한 명의 젊은 목숨도 잃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노력이, 옳고 그름의 정치적 논란을 떠나, 감동을 준다.
청춘들의 고귀한 생명과 자유의 가치
1대 1027은 이스라엘 정부의 계산법이다. 이 어리석은 계산법은 현명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어떤 극한 상황이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결단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병사들의 믿음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게 하고, 그 힘이 곧 나라의 힘이 되는 참 멋진 계산법이다.
나라를 위해 총을 든 청춘들의 생명과 자유는 소중하다 못해 고귀하다. 1,027배가 아니라 그 이상일 수 있어서, 값으로 매길 수도 없다.
한편, 생명과 자유는 다른 개념인 듯 하지만, 결국은 같은 개념이다. 생명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자유가 없으면 생명도 없다.
죽은 목숨에게는 자유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 자유가 없는 자는, 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 – 패트릭 헨리
그렇다. 우리의 존재이유가 되는 생명과 자유. 그 의미는 무엇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방종과 다른 개념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그 자유를 위해 촛불도 들고 깃발도 들고 돌멩이도 던지고, 때로는 목숨도 던진다.
그런데 그토록 소중하게 얻은 자유의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 몰라 때로는 히피가 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방탕하기까지 한다.
그 깊은 의미와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한 데서 온 결과일 것이다.
성경은 그 고귀한 가치와 의미에 대해 명쾌하고 신선하고 쉽게 밝히고 있다.
생명과 자유는 진리라는 궤도 안에서만 그 힘을 갖는다. 예컨대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야 생명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불변의 진리다. 새는 공중을 날아야 자유롭다.
물고기가 물 밖이라는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어가듯이, 새가 하늘이라는 궤도를 떠나 새장에 갇히는 순간, 날개에 힘을 잃고 새장 속의 포로로 살아간다.
따라서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우리는 영적인 존재,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통해서만 생명이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곧 창조진리고 생명진리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 증거는 여기에 있다.
생명과 자유는 진리의 궤도 안에서 힘을 갖는다!
만일 이 글을 대하는 그대가 다음의 고민 중에 단 한 가지를 단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다면, 그대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위대한 피조물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운명이란 존재하는 걸까?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면 나의 인생은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은가? 진리란 무엇일까? 보이지도 않는 신은 존재하는 걸까? 신이 있다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평안을 얻기 위해 불경을 외워볼까, 삼종기도를 드려볼까. 예배를 드려볼까? 머릿속에서 이 생각만은 지워버리고 싶은데 왜 이렇게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는 거지? 왜 사람들이 미워지지?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거야? 왜 나 자신마저도 사랑할 수 없는 거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되어 갈까? 이렇게 아등바등 하며 비굴하게 살아야만 하나? 취직은 해야겠지? 등등.
인간만이 하나님의 숨, 즉 하나님의 호흡이 불어넣어져 지음 받은 유일한 창조물로서, 동식물과는 다른 존재이기에 창조주에 대해, 진리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미래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고 의심을 품는다. -창세기 1장, 2장
존재 의미를 찾아, 또한 자유를 찾아 나서는 암탉이나 갈매기는 만화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암소라 할지라도 우리가 별 죄책감 없이 스테이크로 요리해서 맛있게 먹고, 아무리 주인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개라 할지라도 건강에 좋다면 가차 없이 보신탕으로 요리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인간이 죽어서 모기나 고양이나 돼지로 환생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좀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언젠가 모기 죽이는 것이 갈등이라고 말씀하셨던 달라이라마의 고민도 이 상쾌한 진리 앞에서 끝날 것이고, 이승에서 유달리 게을러 후생에서 죽어라고 일만 하는 소로 환생할거라는 악몽에 시달리는 인생이 있다면 지금부터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시작될 것이다.
어쨌든, 안개와 같이 어느 날 스러져 가는 인생 여정 가운데, 우리의 청춘들은 어떻게 생명 있음에 감사하고 자유함에 황홀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진리라는 궤도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이 우리의 가치를 매기시는 어리석은 사랑계산법에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어리석은 계산법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고, 거부하고 빈정거리는 우리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화목제물로 희생하시는 것이었다.
간혹,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고, 위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커녕, 자신을 능멸하고, 조롱하고, 못 박고, 침 뱉고, 멸시하고, 옷을 찢고, 뺨을 때리고, 매질하는 사람을 위해 죽어주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원수 같은 그 사람을 축복하며 용서하고 그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뤄주는 죽음이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계산법,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온 세상 인류를 살려내는, 하나님의 현명한 계산법으로만 가능하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ㅂ버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 – 사도 바울의 서신, 로마서 8장
이 땅에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물 떠난 물고기처럼 갈증 나고, 시달리는 인생문제로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만나는 길로 오신 참된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
운명이라는 슬픈 유산을 안고 때로는 가난으로, 질병으로, 무능으로, 막연한 두려움과 고독으로 죽어가야 할 운명에 묶여, 우리의 삶을 도적질하고 훔치고 멸망으로 몰아가는 영적인 존재 사탄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구속하신 참 제사장으로, 그 원수의 머리를 밟고 승리하신 참 왕으로, 이 땅에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이시고 지혜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바로 이 순간 마음 문을 열고 영접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삶에 생명과 자유를 불어넣으신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장 9-13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니라’’ – 요한일서 5장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 로마서 8장, 9장 1절 중에서
진리 그 자체, 생명 그 자체이시며, 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창조주 하나님이 영광 본체를 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죄의 문제를 십자가 죽음으로 대속하시고,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으며, 운명이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우리를 포로삼아 끌고 다녔던 사탄의 권세를 완벽하게 밟아 버렸다는 것은 이 메시지가 바로, 복음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다. 종교는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헤매지만 복음은 진리 그 자체다.
동화사의 큰스님 진제스님의 영원한 화두인 ‘참 나’를 찾는 것이야 말로 지고지순한 철학이요, 종교의 정점이다. 진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오롯이 소진하신 성철 큰스님은 그래서 불교계의 귀감이시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과 생명, 그리고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사랑, 그대는 디르사처럼 어여쁘고, 예루살렘처럼 곱고, 깃발을 앞세운 군대처럼 엄위하구나’ – 아가서 6장 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요한복음 5장 24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요한복음 8장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계산법은 1대 1027 정도가 아닌, ‘바보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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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 vol.8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샬리트 상병 구하기 [HIM vol.8ㅣGetting strength from the word] Saving Corporal Charlotte](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jfWvK5rrNN3WbebM4R7WfNULJOwVZToDzj4tEKcxI12Ivdl-VnFq-snijQgRb9sximzb2HLCHpMtZl2Q1xjX9vHPemh3ypAC-hUdpk2GqWkX2ftVXAEkIP80S50gnjyFocoqJD2LIjbesoMjCaihqPYhXsvYFkbNHlmlgTKo365OFr3JFKv61ZAgY6aUmB/w640-h424/HIM_vol.8_%EC%8D%B8%EB%84%A4%EC%9D%BC_%EC%83%AC%EB%A6%AC%ED%8A%B8%20%EC%83%81%EB%B3%91%20%EA%B5%AC%ED%95%98%EA%B8%B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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