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 vol.9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청춘들아, 질문해라 고로 존재하리니!
Feature in Interview 말씀에서 HIM을 얻다 : 기독교 | 글 김사진 예수사랑교회 목사
청춘들아, 질문하라
고로 존재하리니!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나라 최전선을 지키는 병사들이 생각난다.
목사로서의 출발이 군부대 사역과 공동체 운동이었기 때문인지, 카키색 청춘들에 대한 나의 애정은 각별하다. 특히 '영화 20도면 빤쓰바람'으로 통했던, 강원도 지역의 씩씩한 신병교육대와 수색대대는 마을 한 구석이 알싸해지는 기억들이 많아서 더욱 그립다.
철원에서 만난 청년, 그리고 이병철 전 회장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철원의 조그맣고 예쁘게 지어진 교회당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장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해서 이름도 '어머니 교회'라 했다. 그런데 저 뒤 편 자리에 앉아있던 낯선 청년 하나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 무슨 설교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예배 후 그와 나눈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청년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이렇게 질문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왜 고통을 줍니까?"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면 굳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무거운 질문에 비해 그의 갈등 스토리는 귀여웠다. 그 날은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고무신 거꾸로 신고 시집가는 날, 이별선언의 요지는 '사랑하지만, 운명이니까'였단다. 하여튼 나의 답변이 그에게 해답이 되었는지, 그 청년은 정신적 혼란 상태에서 결심했던 '극단적 행동'에 브레이크를 잡았고, 무사히 전역했다.
목회현장에서 무수히 만난 사람들, 청년들 중에 유독 그가 지금 떠올랐던 것은, '삼성그룹의 창업자, 대한민국 부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병철 전 회장이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기 한 달 전 천주교 신부에게 보냈다는 24개 문항의 질문지가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고, 그 질문이 바로 '운명대로 살다가 극단적 죽음'을 택하려 했던 바로 그 청춘의 질문과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다른게 있다면, 한 사람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운명 속에서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아등바등 하는 흉한 꼴은 보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돈과 권력과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인 채, '좋은 죽음'을 고뇌했던 성숙한 노인이었다면, 다른 한 사람은 인생의 여정 속에 수없이 지나쳐갈 철없는 사랑 따위로 젊은 목숨을 스스로 던져 '화끈한 죽음'으로 배신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려했던 앞길 창창한 청춘이었다는 사실 뿐.
질문의 본질은 똑같았다. '인간이 갖는 근본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으니까. 이병철 전 회장의 질문은 훌륭하고 적확(的確)하다.
'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는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이상 J일보에서 인용
이 외에도 영적인 통찰력 없이 머리에서 나오는 사유만으로는 절대로 답을 줄 수 없는 고뇌에 찬 질문이 20문항 더 있다.
성공한 사람은 질문도 훌륭하다. 그런데 훌륭한 질문에 훌륭하고 적확한 대답이 없을 때 우리는 몹시 답답해진다.
훌륭한 대답은 완전한 해결책이 동반되어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소위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 사주, 팔자, 기독교와 천주교가 말하는 원죄, 불교가 말하는 업보 같은 것에 시달리고 괴로워할 때, 그에 대한 대답은 '인생 문제 끝'이 되어야 하고, 머리 나쁜 사람도 금방 이해가 될 만큼 단순 명쾌해야 한다.
특히 물질적이거나 육신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질문일 때는 반드시 영적인 대답이 되어야 맞다. 영적인 것을 육신적 비유로 해석하려드는 순간, 그 대답은 불완전한 것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거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 영적인 소경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기준에 매여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쉬운 것을 자꾸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거나, 사실은 애매한데 현란한 어휘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이해 못하는 쪽이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안 풀리는 인생문제로 악 소리 난다고 하면, 한 쪽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고 한다.
답은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똑같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라는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얘기다. 운명이란 모순덩어리고 때로는 얄궂은 거니까.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을 거니까. 천하의 부자도 불치병에 걸려서 화려하고 좋은 것 다 놓고 빈손으로 떠나야 하고, 연세 80에도 정정한 할아버지는 당장 저녁거리 해결하려고 종이 박스를 찾아 엄동설한 가파른 길을 영차영차 오르내려야 한다. 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고, 빨리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도 모아지는 것이 없고, 모아 놓았는데 어느날 손가락 사이로 슬며시 빠져 나가버리는 소설 같은 운명···.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은수저 물고 태어나 인생 자체가 명품이고, 누구는 4시간 자고 나머지는 죽어라고 일하고 공부해도 사회의 주류에 끼어들 수 없는 것, 이야말로 아프니까 운명이다.
만일 이 운명이라는 시나리오를 전능자 하나님이 잡고 흔들고 있다면, 그 하나님은 믿을 필요가 없다. 잔인하고 얄궂고 못된 신을 믿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고, 어차피 정해진 운명대로 살 거면 추운 날 교회 가는 것보다는 뜨듯한 소파에서 감자칩 먹으며 뒹구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도 일요일엔 꼭 교회에 가야 하나님이 복 준다고 말하는 종교지도자가 있다면 사기 치는 거다. 나도 목사지만.
그렇다면 진짜 하나님은 계시는가.
성경은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부처님도 공자님도 못하신 이 장엄한 선포는 스스로 계신 자 -I AM WHO I AM-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만이 할 수 있는 대 선언이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도 하신다. 바람이 불어도 보이지 않으나 나무 이파리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으나 그가 우리 안에서 하는 일을 보고 그의 존재를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주 공간에 푸른 지구 하나 띄우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 손으로 지구를 돌리신다.
태양을 도는 지구가 뜨거운 태양에 너무 가까웠다면 우리 모두 뜨거워 죽을 것이고 너무 멀어졌다면 얼어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공중에 나는 새는 곡간에 곡식을 거둬들이지 않아도 굶지 않고, 들에 핀 백합화는 길쌈도 하지 않는데 솔로몬 왕이 입은 비단 옷보다 더 아름답다.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셨는데, 이천 년 전에 유대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어졌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incarnation- 이 땅에 오셨으나,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니 이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절대적 은혜를 받아야만 믿고 구원을 얻게 된다. -요한복음 1장, 바울서신 중 에베소서 2장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치유하며 마음과 생각까지도 지키고 보호하신다. -히브리서 4장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광 본체를 버리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죄와 저주와 재앙을 담당하시리라 약속하신 언약이 구약(舊約)이며,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신약(新約)이다. -요한복음 5장, 20장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올바른 질문과 해답 가져야 당당한 존재
그렇다면 과연,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과 슬픔과 질병과 가난도 동시에 주시는 것일까.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지음 받아 이 땅을 다스리며 번성하고 충만한 복을 누리는 존재였다. -창세기 1장
그러나 간교한 들짐승 뱀 속에 들어간 사탄, 인류의 탄생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흑암과 공허와 혼돈으로 이 세상을 장악한 이 세상 신, 마귀, 옛 뱀, 큰 용이라 불리는 존재가 에덴의 축복을 누리며 완벽한 사랑과 신뢰관계로 살아가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속이고 공격하였다. -요한계시록 12장, 창세기 3장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야 생명이 있고 새가 하늘을 날아야 자유하듯이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는 창조원리와 생명원리를 결단코 잊지 말라고 기억장치로 만들어 놓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교묘하고도 선의적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로 변질시킨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과 맺은 은혜계약이 파기되는 순간, 인간은 고통과 재앙과 저주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남자는 수고하여 이마에 땀을 흘리고 수치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가리려고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여자는 남자에게 집착하고 매달리고 요구하고 해산하는 고통을, 이 땅은 엉겅퀴를 내며 독을 품어 늙고 죽고 병드는 저주를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이 운명적 저주의 책임 소재를 하나님은 사탄을 향하여 분명히 밝히고 계신다.
'네가 이렇게 하였다.' (You have done this) -창세기 3장 14절
점쟁이나 무당만 귀신들려 점치고 작두 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전통과 철학과 유전과 헛된 속임수로 우리를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광채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존재, 우리를 속이고 죽이는 욕심쟁이, 살인자, 거짓말쟁이, 우리의 기쁨을 훔치고 도적질하는 자,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인 양 속이고 흉내 내는 자, 마귀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막연히 살아가는 우리도 마귀가 깔아 놓은 메트릭스 시스템, 즉 운명이라는 시나리오에 끌려 다니며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듯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며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였다고 사도 바울과 요한 사도는 성경을 통해 밝히고 있다. -요한복음 8장, 골로새서 2장, 요한일서 3장
부처님도 훌륭하시고 성모 마리아도 고결하시며 공자님도 올바르시지만, 우리의 고통과 저주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실 수 없는 이유는, 일단 남자의 후손이기 때문이고 부활하지 못했으며, 기름 부어 세운 왕, 제사장, 선지자 세 가지 직분을 동시에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돈만 많다고 부자가 아니라, 영적인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기준으로 변질시키거나 아집과 교만과 헛된 지식이 덕지덕지 붙어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믿지 못하는 자를 일컫는다. 우리 인간은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 속에서 올바른 해답을 가져야 비로소 아름답고 당당하고 멋있게 존재한다. www.jxlovechurch.com
영적세계전문가
![[HIM vol.9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청춘들아, 질문해라 고로 존재하리니! #김서권목사 #서초동예수사랑교회 #이병철 #마지막질문 #인생해답 #고통의이유 #하나님의사랑 #운명극복 #신앙의힘 #청년메시지 #복음](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gGtI5cZ1qUl8tkZ9OHXD1-4172rHjYx8ygEG9ZhWbBS-AOg8ymkC3wVULyK87_azzgnS6hxlLlFWpC9UUCPn2VTzObhQKOKFAfUi2vi8dDYCE3zbmCY_qE10o1fGSgo4Sq5K47KtrrD2bteMxez7YsLWvYRNKHTJXWPfBqJlGFWKCgFqbQSqqZBzQU0hle/w640-h424/HIM_vol.9_%EC%8D%B8%EB%84%A4%EC%9D%BC_%EC%B2%AD%EC%B6%98%EB%93%A4%EC%95%84,%20%EC%A7%88%EB%AC%B8%ED%95%B4%EB%9D%BC%20%EA%B3%A0%EB%A1%9C%20%EC%A1%B4%EC%9E%AC%ED%95%98%EB%A6%AC%EB%8B%88!.jpg)
예수는 그리스도! 아멘!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