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 vol.16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화려한 나비, 칼리마

 

칼리마라는 나비가 있다. 그 날개를 펼쳤을 때의 찬란함은 가히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눈부시지만, 일단 날개를 접으면 흉측하기 이를 데 없어 ‘죽은 잎사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자연을 통해 알 만한 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작은 나비 날개에 적어 놓은 독특한 비유법에 나는 또 한번 감탄한다.

| Feature in Interview 말씀에서 HIM을 얻다 - 기독교 |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목사사진 조상철 포토디렉터


화려한 나비, 칼리마

칼리마라는 나비가 있다. 그 날개를 펼쳤을 때의 찬란함은 가히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눈부시지만, 일단 날개를 접으면 흉측하기 이를 데 없어 ‘죽은 잎사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자연을 통해 알 만한 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작은 나비 날개에 적어 놓은 독특한 비유법에 나는 또 한번 감탄한다.


현란한 칼리마의 이면을 볼 줄 알아야

l

칼리마라는 나비는, 마치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란함, 그 뒤편에 숨겨진 목마르고 허기진 공허함, 나아가서는 추악함 같은 것을 은유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너 나 할 것 없이 분주하고, 살벌하고 눌려있는 만큼,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들리는 것에 집착하고 욕망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깊고 깊은 마음과 영혼은 더욱 쓸쓸해지나 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래그래, 괜찮으니 욕망하며 살라고 다독이고, 어떤 이는 욕망의 발걸음을 멈추어 서보라 한다. 둘 다 멋있다. 그러나 나는, 영향력 있는 이런 이들의 다양한 사유 세계 속에서 인생의 참된 길을 찾고 있을 청년들을 생각하면 애틋한 긍휼이 밀려온다.

충분히 욕망하며 살아온 젊은 시대를 거치는 동안,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좌충우돌 내 인생을 끌고 왔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취지는 것도 아니었고, 한편으로는 욕망대로 일탈한 나의 삶을 절대로 풍성하게 하지 못했었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만, 욕망해서 낳은 일탈의 쓰디쓴 열매를 맛보았기에 또 다른 쓴 열매를 맛보고 있는 과거의 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은 얻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내 삶의 존재 이유는, 푸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어떻게 욕망을 거룩한 열정으로 바꿔 이 시대를 아름답게 바꾸어 나갈 수 있을지, 그 길을 제시하고 그렇게 살도록 구체적으로 인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들이 나 같은 기성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비애와 책임을 동시에 느낀다. 특히나 목회자라는 신분은 일단 소통의 문을 걸어 잠그는 자물쇠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1조의 자산을 지닌 엄청난 부자교회의 원로 목사님은, 대놓고 후계자로 세운 아들 목사를 비방한다. 눈물도 없고 수고도 없는 천국, 금은보화가 가득한 천국이 있으니 회개하고 구원 받으라고 설교는 하는데, 백 세 가까운 연세에 칠순 된 아들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수용하지도 못한 채, 욕망대로 생각대로 말씀을 하시니, 같은 목사로서 비애를 느낀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모님의 자비를 말하는 바티칸의 화려한 사제들은 엄청난 이권에 개입하고 추악한 스캔들에 매여 서로를 폭로하고 비난한다.

마음을 비운 승가의 불자들은 치매에 걸려 비참한 인생으로 살게 될까 두려워, 밤이 새도록 화투를 쳐서 두뇌를 단련시킨다.

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 성공자들은 정치적 욕망, 돈에 대한 욕망을 터놓고 내뿜으며 뒤로는 응큼한 욕망도 서슴없이 배설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대중 앞에서 화려한 칼리마가 되어 우아하게 날개를 펼친다.


청년들이여, 무엇을 욕망하는가?

l

이에 비하면 우리 청년들의 욕망은 아직 설익고 신선하고 어리고 풋풋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청년들에게 ‘새벽이슬’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셨다.

삼단 고음 아이유가 그려서 인터넷에 올린 탐스런 복숭아 그림을 바라보며 복슬복슬한 여자 엉덩이를 욕망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섹시의 화신 걸그룹 멤버들의 절묘한 가슴골을 따라 잡지책의 숨은그림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 얼마나 애교스런 욕망인가.

하지만 청년들의 미래를 ‘죽은 잎사귀’로 끌고가는 진짜 욕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숨어있다는 데 욕망의 위험성이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극작가인 죠지 버나드 쇼의 욕망철학을 들어보자.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하나는 욕망대로 사는 것, 다른 하나는 욕망대로 살지 못하는 것.’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그 시대를 풍미했던 희대의 미녀,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의 구애를 거절할 만큼 충분히 냉소적이다. 이런 류의 훌륭한 사람을 보면 일단 기가 질린다.

그에 비해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가 내린 욕망의 정의는 짜릿하다. ‘눈으로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면 거리는 임산부로 넘쳐나고, 눈으로 살인할 수 있다면 거리는 시체로 가득찰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언도 동시에 남겼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어느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생각대로 살라는 말을 욕망대로 살라는 말로 바꾸었다가는 큰일날 일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의 생각은 내재된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이 명언 또한, 인생의 길을 찾기엔 무지 애매하다.

그래서 차라리 나는 이런 말이 더 좋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것이다.

‘별을 따려고 손을 뻗으면, 발밑의 꽃을 잃어버린다.’

발밑의 꽃을 보고 만족하며 살든지, 하늘의 별을 따든지, 둘 중 하나로 결단하라는 말로 생각하면 다소 포괄적이다.

그렇다면 별이냐, 꽃이냐. 소위, 욕망대로 살고 있는 그 욕망을 성취시켜서 성공한 사람들은 잔잔하게 향기를 내는 인생의 들꽃을 놓치고 살기에, 화려함 뒤에 숨겨진 칼리마의 죽은 잎사귀로 살아간다. 반면에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을 단 한 번도 욕망하지 못하고 발밑의 작은 들꽃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그것만이 이 광활한 세상의 모든 것인 양, 고상한 고집을 부리며 답답하게 산다.

그러고 보니, 이 또한 버나드 쇼의 욕망철학과 다를 바 없는 허탄한 말이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성경으로 돌아갈 일이다.

성경은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빛나는 별이 우주 공간을 떠도는 암석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주 탐사 이전에 알고 계신 분이시다. 또한 들의 백합화가 솔로몬이 입었던 화려한 비단 옷보다 아름답지만 시들고 말라버린다는 것을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니까.


하늘의 별을 따고 발밑의 들꽃도 향유하는 비밀
l

나는 적어도 원숭이의 단백질이 진화하여 내가 되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홍합이 나비가 되더니, 어느날 이 땅을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던 도마뱀이 어느 날 문득 날개를 달고 흉물스런 시조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어여쁜 카나리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침팬지가 사람이 되었다는 진화론적 설명보다 더 끔찍한 생각이 든다.

다소 딴 데로 논리가 빗나간 듯 하지만,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 기뻐하고 기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욕망하며 사는 것에 대한 본질과 그 욕망에 제어기를 달아 아름답고 찬란한 열정으로 바꾸는 비밀 이야기를 성경 속에 명백히 밝혀 놓으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원래 욕망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 생명이 있고, 새가 공중을 날면 자유하며,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 짐승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 살 때, 이 땅의 모든 것을 누리며 다스리고 충만하게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명예욕, 영적인 것을 무시하는 육신적 욕망,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빵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우리의 영혼에 불을 지핀 존재가 있었으니, 성경은 그 존재를 마귀, 사탄, 귀신이라 적어놓았고, 사람들은 욕망이라 읽는다.

무당들이 귀신 들려 작두 타듯, 사람들이 이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타면 가족을 죽여서라도 돈이라는 욕망을 채우려 하고, 권력이라는 욕망의 덫에 걸리면 어제의 친구를 배신하여 오늘의 비겁한 삶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듯 욕망대로 살다가 허무해지면 어느 날 또 하나의 욕망,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은 욕망에 겨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어디 나 죽은 뒤 당해보라는 복수의 욕망에 불타오르면, 가장 처절하고 슬픈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그런데 이런 욕망은 오히려 정직할 수 있다. 뻔뻔한 욕망, 나비, 칼리마처럼 화려하고 번듯한 앞쪽 날개로 자신을 포장하고 뒤에는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음흉한 욕망을 감추는 또 다른 욕망은 가장 추악한 욕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욕망대로, 욕망하며 사는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폭로하셨다.

결국 예수님은 욕망하며 사는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셨다. 그들의 허탄하고 비열한 욕망을 이길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늘날, 현재 욕망하며 살다가 죄책감에 사로잡힌 우리들, 힘 빠진 우리들, 자신을 파괴시키는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몰라 방황하는 우리들을 위해,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하는 길을 여시기 위해, 우리의 비극적 욕망을 친히 담당하신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는 사탄, 그 머리를 밟아버린 만왕의 왕으로, 욕망이 뿌려놓은 원죄덩어리를 축복덩어리로 바꾼 제사장으로, 그리고 목마르고 허기진 우리의 삶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으로 인도하는 선지자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청년들의 영혼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욕망은 거룩한 열정으로 바뀌어 개인의 삶도 향기로워지고 이 세상도 밝아진다. 손을 뻗어 별도 따고, 발밑의 들꽃 향기도 향유하게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www.jxlovechurch.com




[With Him📖] Ep.2 “욕망의 나비 칼리마” | 책 읽기 | 🎲 Play-Ground 시즌1 다시보기 | 2020.09.29 방송

딥앤하이TV




#김서권목사 #서초동예수사랑교회 #욕망 #거룩한열정 #칼리마나비 #청년메세지 #예수그리스도 #공허함 #인생의길 #성경말씀 #회칠한무덤

댓글

  1. 아멘!
    욕망을 위해 살다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고백할 수 있도록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셔서 고백 속에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아멘!

    답글삭제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김서권 칼럼 #179ㅣ흔들림 없는 이름 위에 서다

[김서권 목사] 오늘을 위하여 2025 #158ㅣ언약 중심으로 예배 드리는 복음적 공동체, 315 nation (출애굽기 1장 1-7절)

김서권 칼럼 #248ㅣ영원히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