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 vol.20ㅣ말씀에서 힘을 얻다] 노랑 블라우스 입은 여대생에게

강사에게 질문을 던지던 그 여대생이 안쓰러웠다. 굳이 남자친구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연애하다가 사랑의 쓴 맛을 보지 않아도, 아니 사랑이 너무 달콤해서 그 총명함과 도전정신이 자칫 빛을 잃지 않더라도··· 쉽게 말해서 좌충우돌 시행착오 하느라 천 번을 안 흔들려도 충분히 인생의 해답이 있는데···. 오늘날의 청춘들이 행여 말빚이나 말장난에 놀림을 당할까봐 가슴이 아프다.
| Feature n Interview 말씀에서 HIM을 얻다 |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목사

 



노랑 블라우스 입은 여대생에게

강사에게 질문을 던지던 그 여대생이 안쓰러웠다.

굳이 남자친구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연애하다가 사랑의 쓴 맛을 보지 않아도, 아니 사랑이 너무 달콤해서 그 총명함과 도전정신이 자칫 빛을 잃지 않더라도··· 쉽게 말해서 좌충우돌 시행착오 하느라 천 번을 안 흔들려도 충분히 인생의 해답이 있는데···. 오늘날의 청춘들이 행여 말빚이나 말장난에 놀림을 당할까봐 가슴이 아프다.


◯ 멘토들의 말장난에 상처받는 청춘들이여

늦은 밤 모 방송사의 지식 나눔 콘서트를 우연히 보다가, 강사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지던 그녀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노랑 블라우스의 그녀는 예뻤고, 초롱초롱해 보였다.

그 여학생은 손을 번쩍 들고 삶ㅇ과 사랑에 대해 질문했다. 삶의 존재이유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피상적으로 귀결된 강사의 결론에 대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부연설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솔직한 그녀의 어조는 그동안 숙연했던 분위기를 다소 흔들어놓는 듯 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흥미로워서 나는 잠시 주목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행복’을 이야기한 그분은 이렇게 되물었다. “남자친구 있습니까?” 그녀는 “없다”고 했고, 질문을 받은 그분은 “가서 남자친구부터 사귀어 보라”고 조언했다. 청중은 까르르 웃었고, 그 여학생은 그래보겠노라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몹시 아쉬웠다. 그 멘토에게 붙은 수식어는 엄청난 내공과 수행이 아니고는 도저히 갖다 대기 어려운 것인 만큼, 그 여대생에게 좀 더 진지하고 명확하고 명쾌한 답을 주어야했다고 생각하는 건, 단지 내가 목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연애라는 게 참 묘한 것이어서, 20초 만에 필을 받아 사랑에 빠지면 20년의 공덕이 허물어지는 위험성도 있다. 미국의 전쟁영웅, CIA 국장도 잘못된 사랑에 빠져 한 방에 훅 가지 않던가.

이런 사랑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심한 죄의식 때문에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시달리다가, 그 누구도 사랑하기 어려운 슬픔에 빠진다. 이럴 때,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해서, 자기 환멸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에게 순간, 자기애(自己愛)가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쉽게 ‘오는’ 사랑, ‘되는’ 사랑이라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미움과 시기, 질투와 비교 심리, 경쟁심리, 자기비하로 인해 급증하고 있는 자살 문제는 한 순간에 끝날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사랑할 수 없는’ 존재다. 목사로서 연륜을 쌓아갈수록 이 결론은 더욱 옳다고 느껴진다.

사랑과 지성의 대명사로서 크리스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엘리트 목사, 스테디, 베스트셀러 저서로 대형서점의 특별 진열대를 가득 채웠던 그분도, 때 늦은 중년사랑이 그만 걷잡을 수 없는 바람기가 되어 교회에서 퇴출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시된 자기 사랑은 이래서 위험하다.

따라서 인간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진단이 참으로 경외롭다. 아니, 인간 뿐 아니라, 소위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명쾌한 진단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원죄를 안고 태어난 우리 인생들의 정체성과 본질을 단순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욕심쟁이, 거짓말쟁이, 살인자들이구나.’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아, 겉은 번지르르한데, 세상 풍습을 좇고 권세 잡은 자들을 따라다니는, 너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다.’ –마태복음 8장, 에베소서 2장–


◯ 요셉의 인생역정과 그가 보여준 진정한 용서

올바른 의사는 진단을 잘하고 처방을 잘해서 사람을 살린다. 영적인 의사인 목사도 마찬가지다. 단지 목사와 의사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의사는 상대편 환자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지만, 목사는 자기 자신의 곪은 부분부터 잘라내야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한 때,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공동체 운동, 군 사역 등 사회정의를 외치며 의로운 척, 믿어지는 척, 열심히 사랑하는 척하면서 자기애에 빠져 속으로 은근 교만했다가, 사람이나 환경이 주는 갈등 앞에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 대기를 반복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의 명언대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천 가지 법은 잘 지키고 살겠는데,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십계명 지키기는 어려웠다. 예수님처럼 사랑해 보려다가 오히려 상처받고, 용서해 보려고 몸부림치다가 더 아팠다.

나도 아파봤는데, 너도 당연히 아플 것이다. 나도 흔들려 봤는데, 너도 천 번은 흔들려야 될 것이다. 이 말은 잘 분석해 보면 하나마나 한 말이다. 

아프고 흔들리는 청춘은 안 아픈 길, 안 흔들려도 되는 길을 애타게 찾고 있기에, 멘토가 있다는 곳에, 힐링이 있다는 곳에, 토크가 있다는 곳에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랑 블라우스의 여대생처럼 똑똑하지만, 아직 해답은 없는 것이 청춘이니까.

그래서 청년들에겐 시간을 더 살아낸 어른들이 필요한 것이다. 율법으로 짓누르고 정죄하고 잔소리해대는 어른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문제가 근본적으로 어디서 왔으며, 그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어른을 우리는 멘토라 부른다. 

흉내만 내가 이 세상 떠나가면 말빚을 잔뜩 지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멘토는 삶과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 확실한 정의를 내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물쩍 넘기거나, 화려한 수사로 수식어를 달아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해서 청춘들을 헷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나도 아팠으니 너도 아파보라고 말하면 잔인한 것이다. 

성경에는 준수하고 아름다운 처년, 요셉이 나온다. 그의 환경은 불행했다. 세 명의 계모와 열 명의 배다른 형들이 조롱하고 시기하고 괴롭히고 죽이려다가 결국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다. 어미 없는 어린 동생 베냐민을 남겨두고 쇠사슬에 매인 채, 멀고 먼 이방 땅을 향해 걸었던 그 길은 얼마나 목마르고 고독하고 두려웠을지 생각해보라.

그는 노예생활 중, 돈 많고 개념 없는 여자의 집착 때문에 죄 없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애굽은 물론, 이스라엘까지 기근으로 죽어갈 위기에서 구해낸 끝에 국무총리가 되었다. 고향에서 곡식을 사러 온 형들, 머리를 조아리고 벌벌 떠는 형들을 향해 그는 말한다.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이곳에 나를 팔았으나 걱정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여기 앞서 보내셔서, 큰 구원으로 형님들의 자손들까지 생명을 구하시려 한 것입니다. 나를 이리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의 통치자가 되게 하신 것이지요.’

요셉은 동생 베냐민의 목을 끌어안고 울고 나서, 형들 하나하나 입을 맞춘 후, 부둥켜안고 울었다. –창세기 45장, 표준 새 번역–

이것이 진정한 용서다. 푸른 지구 하나 띄우시고 한 손으로 돌리시는 히스토리(His story)의 주인공,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의 삶이 소유되고 견인되어 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용서의 모범이다.


◯ 하나님의 말씀 속에 행복한 삶의 본질이 있어

그렇다면 요셉처럼 성공도 못하고 여전히 상처 속에 울고 있는 우리 중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세계사가 인정하는 최고의 지성이자 영적인 사도였던 바울은 말한다.

‘내가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 아펭서 여러분을 위하여 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탄에게 이용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책략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표준 새 번역–

각종 종교들의 교리책에서는 사탄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지만, 오직 성경만이 이러한 존재를 인간의 원수로 규정하여 그 머리를 밟아버린다. (창세기 3장 15절, 요한일서 3장 8절)

그런데 이 사탄이라는 존재는 만만치 않아서 자신의 가슴을 안고 위로한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면서 지금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명령하고 선포해서 내어쫓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삶의 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가슴 속에 천국이 임한다. (마태복음 12장 28절)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야 생명이 있고,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려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그런데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여 각종 철학과 전통과 헛된 속임수로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는, 절대로 삶의 본질도 행복의 의미도 규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도 용서도 할 수 없다. 이들 배후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이 세상 신, 사탄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11장 14절, 골로새서 2장 8절)

이렇듯 운명과 업보와 팔자에 시달리는 우리의 삶에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해서 죽음보다 더 큰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 이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주먹으로 뺨을 맞으시고 옷을 벗겨 조롱당하시고 창과 대못으로 찔려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대속의 죽음을 우리는 사랑이라 말한다.

이 사랑을 받은 자로서 자신을 귀히 여기고, 또한 사랑의 빚진 자로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크게 힘써 강조할 필요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는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희생과 양보와 관용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서와 사랑의 모범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여, 그 이름의 권세와 사랑을 힘입어, 나도 사랑하고 너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는 것이 행복한 삶의 본질이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난다. ‘그대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해주시오. 그러면 그대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겠소.’ –헤르만 헷세–

끝으로 노랑 블라우스의 그 여대생이 이 글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www.jxlove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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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세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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