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273ㅣ왜 하나님이 오셔야 했는가
"왜 하나님이 오셔야 했는가"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태초에,
빛이 아직 말해지기 전,
하늘과 땅 사이에는 깊은 어둠이 있었다.
“혼돈, 공허, 흑암” —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하나님이 비켜 서 계신 자리였다.
그 침묵 속에,
사탄은 빛을 흉내 내며 사람을 속였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나
그 마음속에 다른 목소리를 받아들였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 말 한마디가 천년의 피를 만들고,
세상에 죽음을 흘려 보냈다.
그날 이후,
사람이 잉태되면
그 속에 원죄의 독이 스며들었다.
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본성이 되었다.
나는 내 안에서 그 흔적을 본다.
빛을 원하지만 어둠을 품고,
사랑을 말하지만 미움을 뿜어낸다.
이것이 내 속에서 활동하는 마귀의 흔적,
요한복음 8장 44절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는
그 말씀이 내 심장을 찌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왜 창세기 3장 15절이 필요한지,
왜 하나님이 오셔야만 했는지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그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울음이었다.
타락한 피를 다시 거룩하게 하려면
그분이 친히 피를 입고 오셔야 했다.
죄를 멀리서 꾸짖는 것이 아니라,
죄의 한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의 눈물 속에서 함께 우셔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옷을 입으셨다.
마구간의 냄새 속에,
인간의 고통 속에,
십자가의 피 속에 들어오셨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곧 성육신의 하나님.
왜 오셨는가?
단 하나 —
나 때문이었다.
내 안의 흑암을 보신 하나님,
그분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오셨다.
나를 대신해 상하고,
나를 대신해 버림받고,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
이제 나는 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눈물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살이 된 진리라는 것을.
빛이 다시 내 안에 말하기 시작한다.
“너는 더 이상 흑암의 자식이 아니다.
나는 네 안에 거하리라.”
그때 나는 무릎 꿇고 고백한다.
“하나님, 이제 알았습니다.
왜 오셔야 했는지,
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는지.”
그리고 들려온다.
십자가 위에서 들리던 마지막 음성 —
“다 이루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나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기에
흑암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빛이 나를 다시 창조하셨다.
그분이 오신 이유,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분의 사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이 나의 생명이고,
이 복음이 세상을 살릴 능력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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