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302ㅣ톨스토이의 한계

그래서 이제 삶의 질문은 바뀐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가 아니라 “누구 안에서 사는가.”

"톨스토이의 한계"

 ㅡ 그가 몰랐던 시작.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톨스토이는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는 끝까지 갔고, 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믿음이라는 문 앞에 서기까지는 갔다.


그러나 그는

시작을 보지 못했다.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을 때,

그것이 단순한 자연의 미완이 아니라

이미 침투한 어둠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선악과 이전에 이미 시작된 전쟁을,

말씀을 의심하게 만드는 속삭임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한 문장이

인간의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되었음을.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가인은 동생을 죽였고,

피는 땅에서 소리를 질렀으며,

네피림은 힘을 신격화했고,

욕망은 하늘을 찌르는 탑을 쌓았다.


이름은 달라졌으나 본질은 같았다.

살인은 구조가 되었고,

폭력은 문명이 되었으며,

바벨은 형태만 바꾸어 오늘도 서 있다.


지식은 많아졌으나

인간은 더 공허해졌고,

이성은 날카로워졌으나

양심은 무뎌졌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절망했다.

그래서 이 시대도 절망한다.


그러나 해답은

사상도, 도덕도, 개혁도 아니었다.


해답은

여자의 후손이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분,

죄의 구조를 끊고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릴 단 한 이름.


그리스도.


그분은

혼돈 위에 다시 말씀을 놓으셨고,

거짓을 진리로 가르치지 않고

십자가로 침묵시키셨다.


인간이 신이 되려다 멸망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길이 되셨다.


그래서 이제 삶의 질문은 바뀐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가 아니라

“누구 안에서 사는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인은 용서로,

욕망은 사명으로,

바벨은 하나님 나라로 전환된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문 앞에서 멈춘 이유이고,

이 시대가 다시 들어가야 할 유일한 문이다.


태초부터 준비된 해답,

여자의 후손,

예수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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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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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멘!
    인간이 신이 되려다 멸망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태초부터 준비된 해답, 생명의 길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로 들려주심에 참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죄의 구조와 어둠의 흔적을 지우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을 시작하겠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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