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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065ㅣ이 땅에서 큰 자, 천국에서 작은 자, 세례요한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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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자, 그러나 더 큰 은혜의 시대” ㅡ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260125. 주일 2부) 누가복음 7:24~35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 광야에서 외치던 한 사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갈대, 부드러운 옷을 입지 않은 선지자, 시대를 가르는 마지막 문지기. 예수는 그를 가리켜 말한다. 이 땅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 그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늘의 문 앞에 서서 메시아를 직접 가리킨 자, 예언이 현실이 되는 경계선에 서 있던 자. 그러나 곧 덧붙인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세상은 묻는다. 어찌 큰 자가 작은 자가 되는가. 왜 위대한 선지자가 은혜의 시대에서는 작아지는가. 그 이유는 공로가 아니라 시대의 문턱 때문이다. 요한은 약속을 보았고, 우리는 성취를 산다. 요한은 어린 양을 가리켰고, 우리는 어린 양의 피 아래 산다. 요한은 성령을 예언했고, 우리는 성령 안에 거한다. 그래서 광야의 거인이 십자가 이후의 어린아이보다 작아지는 역설이 일어난다. 사람의 크기가 아니라 은혜의 크기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대는 요한도, 예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한이 금식하면 미쳤다 하고, 예수가 잔치에 앉으면 방탕하다고 한다. 회개를 외쳐도 싫고, 은혜를 전해도 싫다. 자기 기준만 진리로 삼고 하늘의 기준에는 귀를 닫는다. 이것이 사단의 오래된 전략, 반응하지 않는 영혼, 결단하지 않는 세대, 듣고도 변하지 않는 마음. 예수는 묻는다. 너는 갈대인가, 선지자인가. 바람에 흔들리는가, 말씀 앞에 서 있는가. 사람의 박수에 살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에 살 것인가. 큰 자는 자기를 낮추고 작은 자는 은혜 안에서 높아진다. 광야의 위대한 선지자도 십자가의 피 아래에서는 은혜로만 서게 되고, 평범한 오늘의 성도도 그 은혜 안에서는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는 능력이 아니라 은혜로 평가되고, 공로가 아니라 언약으로 결정되며, 크기가 아니라 누구 안에 있느냐로 판단된다. 이 땅의 큰 자가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064ㅣ애굽의 술사들이 흉내내지 못한 하나님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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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라 — 현장의 한가운데서 증거한다” ㅡ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260125. 주일 1부) 출애굽기 8:16~19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 티끌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무시하던 먼지, 발밑에 깔려 있던 존재, 아무도 의미 두지 않던 것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사탄은 흉내 냈다. 빛을 가장했고, 능력을 연출했고, 기적을 광고했다. 그러나 창조하지는 못했다. 생명을 불러내지는 못했다. 흉내는 여기까지였다. 술사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라.” 세상도 인정하는 순간, 하늘의 권세는 이미 승부를 끝냈다. 오늘의 시대도 비슷하다. 기술이 신이 되었고, 데이터가 예언자가 되었고, 속도가 진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흙에서 나왔음을 잊고 스크린 속에서 영원을 찾는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코드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알고리즘으로 숨 쉬지 않으며, 시장 논리로 구원받지 않는다. 티끌에서 사람을 만드신 분, 말씀으로 숨을 불어넣으신 분, 십자가로 죄를 짊어지신 분, 부활로 죽음을 깨뜨리신 분— 그분의 손가락만이 오늘도 생명을 부른다. 사탄은 혼란을 만든다. 진짜와 가짜를 섞고, 복음과 자기계발을 섞고, 은혜와 성취를 섞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역사인지 어디부터가 인간의 흉내인지 헷갈린 채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가락은 다르다.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생명을 만든다. 죄인을 의인으로 부르고, 상처 입은 자를 아들로 부르고, 죽은 영혼을 살아나게 한다. 바로는 완강했다. 기적을 보고도 마음을 닫았다. 오늘의 시대도 비슷하다. 증거는 넘치고, 말씀은 울려 퍼지고,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다. 하나님은 다시 손가락을 내미신다. 재앙으로가 아니라 십자가로. 심판으로가 아니라 은혜로. 강권이 아니라 초청으로. 티끌 같은 우리의 삶 위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닿는다. 그리고 숨을 불어넣는다. “살아나라.” “일어나라.” “내 백성을 보내라.” 그 순간, 흉내의 시대는 끝나고 창조의...

[김서권 목사] 오늘을 위하여 2026 #010ㅣ냉소적인 마음을 버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라 (출애굽기 8장 16-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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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적인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냉소적인 사람이 되면  틀린 길을 가면서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티끌을 쳐서  이를 만드는 세 번째 기적을 행하시자  애굽의 술사들도 흉내내어 보았으나 실패한 후에  ‘창조주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권능을 펼치셨다’고  바로 앞에서 목숨걸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도  바로의 마음은 더욱 더 냉소적이고 강퍅해졌습니다. 냉소적인 사람이 되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바로 한 사람이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므로  애굽의 사람들과 가축까지  심한 가려움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애굽의 술사들은  나일강의 피와 개구리는 흉내낼 수 있어도 생명 없는 티끌로 이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사탄에게는 창조의 능력도 없고,  생명의 능력도 없습니다. 사탄의 모방은 결국 거짓말로 들통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지으신 해와 달과 별. 모세의 돌판에 십계명을 쓰신 하나님의 손가락.   바벨론의 왕궁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 하나님. 초대교회의 부흥을 일으킨 하나님의 손. 병든 곳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가락.  손가락으로 더러운 귀신을 내어쫓는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권능을 조롱하는 냉소적인 사람에게는  제자도 없고 감람산 미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흉내내는 부패한 마음으로 냉소적인 인간이 되면  인간관계도 무너지고 하나님도 버리십니다. 냉소적인 마음을 버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부활 이후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감람산 미션을 품고  온 천하 만민, 가는 곳마다  치유와 창조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멘!  (시편 8편 3-5절, 다니엘 5장 5절, 신명기 9장 10절, 사도행전 11장 21절, 출애굽기 31장 18절, 누가복음 11장 20절,...

김서권 칼럼 2026 #033ㅣ타인···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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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자유"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타인으로 얼룩진  그 모든 타인의 언어가 내 운명을 대신 쓰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원했는지 언제부터 잊었는가. 타인의 박수에 웃고 타인의 비난에 무너지는 타인의 감정에 종속된 인생. 그들은 나를 규정했고 나는 그 규정에 나를 끼워 맞추며 스스로를 잃어갔다. 운명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타인의 기대가 만든 각본, 타인의 욕망이 덧칠한 색깔, 타인의 두려움이 새겨 넣은 상처였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었는가, 아니면 타인의 삶을 대신 연기하고 있었는가. 그러나 어느 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 것이라.” 그 목소리는 세상의 평가보다 깊었고 가문의 저주보다 강했으며 심리학의 분석보다 정확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분은 타인의 운명을 지우고 하나님의 운명을 내게 새기셨다. 타인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게 하셨고, 타인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의 의미로 주셨다. 타인으로 얼룩진 운명은 십자가 앞에서 씻겨지고, 보좌의 빛 아래서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나는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으로 산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 운명은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 운명 위에 하나님의 손이 덮여 있다. 그래서 나는 안다. 타인으로 얼룩졌던 나의 운명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으로 물들어 가고 있음을 본다. 예수는그리스도 📌 [인생곡] "타인(他人)"ㅣ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유의 노래 무료구독 ➡ 클릭

김서권 칼럼 2026 #032ㅣ기다림ㅡ절대 행위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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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ㅡ절대 행위의 신앙"  ㅡ 야고보서 1:19~25 묵상  이 시대는 속도를 숭배한다. 빨리 말하고,  빨리 판단하고, 빨리 분노하고, 빨리 잊어버린다. 그러나 말씀은 말한다. 듣기는 속히 하라, 말하기는 더디 하라, 성내기는 더디 하라. 기다림은 느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자신을 맡기는 신앙이다. 사람은 상황을 보면 조급해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보면 기다리게 된다. 상황은 눈앞에 있지만 약속은 영원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조급함은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말씀 앞에 멈추는 자만이 자기 영혼을 살린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 그 씨앗은 조용히 자라 한 사람의 운명과 한 시대를 바꾼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자는 하나님의 미래를 잉태한 자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보고 돌아서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사람. 자기 존재를 잊은 시대, 정체성을 잃어버린 세대의 초상이다. 그러나 말씀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머물며 그대로 살아내는 자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속에 거하는 자.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기도하며, 준비하며, 순종하며 하나님의 시간표를 존중하는 절대 행위. 기다림은 패배가 아니라 믿음이며, 기다림은 정체가 아니라 성취이며, 기다림은 인간의 무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능력을 신뢰하는 선언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자는 복을 받는다. 행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말씀 안에 머무는 자는 시대를 바꾸는 씨앗이 된다. 오늘 나는 기다린다. 상황이 아니라 약속을 바라보며, 분노가 아니라 말씀을 선택하며, 속도가 아니라 보좌의 시간을 따라. 기다림, 그것은 신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절대 행위다. 예수는그리스도 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