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2026 #013ㅣ자유라 불렀던 감옥

오늘도 로마서 7장의 탄식 위에 하늘의 응답이 울린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그리고 복음은 대답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것이 나를 깨우는 소리이며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해답이다.  예수는그리스도.

 "자유라 불렀던 감옥"

ㅡ 한 철학자의 내면과 모든 인간의 고백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를 말했고

책임을 외쳤으며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고 선언했다.


그의 문장은 강했고

논리는 치열했으며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을

용감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그 사유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보이지 않는 성이 서 있었다.

그는 신을 부정했지만

중립에 서 있지는 않았다.


비어 있는 자리에

다른 주인이 앉아 있었다.

성경은 이것을

세상 신의 지배라 부른다.


사탄의 요새는

광기나 폭력으로만 세워지지 않는다.

이성, 논리, 자율, 책임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벽돌로

내면 깊숙이 쌓아 올린다.

“너는 자유다.”

“모든 책임은 네 몫이다.”

“실패도, 불안도, 공허도 누구 탓도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고독한 감옥을 만든다.

그래서 자유는 곧 형벌이 되고

선택은 곧 두려움이 되며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심문하는 죄수가 된다.


사도 바울은

이 지점을 정확히 고백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이 말은

무능한 인간의 변명이 아니다.


이것은

자유를 가졌다고 믿었으나

다른 주인 아래 묶여 있던

모든 인간의 실존 고백이다.


사르트르의 자유는

죄의 뿌리를 보지 못했다.

원죄 이후의 증상은 분석했으나

원죄 이전의 파괴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신 없는 인간을 선언했지만

그 인간은 끝내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했다.


복음은

여기서 다른 길을 연다.

인간이 자유를 잘못 써서 망가진 것이 아니라

자유 이전에

이미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오셨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인간의 이성 바깥에서

인간의 심장 한가운데로 들어오셨다.

그분은

“더 책임져라”라고 말하지 않으셨고

“더 자유로워져라”라고 외치지도 않으셨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하겠다.”


십자가는

자유를 부정한 사건이 아니라

자유가 감당하지 못한 죄의 무게를

하나님이 대신 짊어진 자리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자유는

형벌이 아니라 해방이 된다.

더 이상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주인에게 끌려가지 않아도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주인을 만난다.


이것이

사탄의 요새가 무너질 때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자유를 외쳤던 철학은

인간을 설명했지만

복음은

인간을 살린다.


오늘도

로마서 7장의 탄식 위에

하늘의 응답이 울린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그리고 복음은 대답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것이 나를 깨우는 소리이며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해답이다.


예수는그리스도.


댓글

  1. 아멘!
    자유와 책임을 말하지만 사탄의 요새를 세워 인간 스스로 가장 고독한 감옥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에, 그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해 직접 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신 목사님, 참 감사드립니다.
    나를 깨우는 소리이자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해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는그리스도, 아멘.

    답글삭제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김서권 칼럼 #179ㅣ흔들림 없는 이름 위에 서다

[김서권 목사] 오늘을 위하여 2025 #158ㅣ언약 중심으로 예배 드리는 복음적 공동체, 315 nation (출애굽기 1장 1-7절)

김서권 칼럼 #248ㅣ영원히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