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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권 칼럼 #300ㅣ예수사랑교회 핵심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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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위해 울어야 할 시간"  ㅡ 예수사랑교회 핵심 훈련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예수님은 뒤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에서 주님의 눈물은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 다가올 세대, 아직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했다. 세상은 변했다 말하지만 실은 더 오래된 길을 다시 걷고 있다. 에덴의 속삭임— “괜찮아, 네가 주인이야.” 그 말은 아이들의 생각을 빼앗았고, 네피림의 시대— 힘과 쾌락이 신이 되어 약물이 몸을 지배하고 정신은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갔다. 바벨의 꿈— 하나님 없이도 가능하다는 착각, 경쟁과 비교의 탑 위에서 아이들은 숨 쉴 자리를 잃었다. 그래서 오늘, 아이들의 마음은 병들고 영혼은 마약처럼 중독된 위로를 찾으며 불안과 분노, 공허가 잠자리를 대신한다. 불신자의 여섯 가지 상태는 교과서의 문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하루가 되었다. 악한 영의 속임은 게임과 화면, 왜곡된 가치로 조용히 스며든다. 이때 교회가 눈물을 멈추면 아이들은 울 곳을 잃는다. 그래서 교회는 다시 아이들 곁으로 간다. 정죄가 아니라 치유로, 통제가 아니라 복음으로. 예수사랑교회는 아이들을 문제로 부르지 않고 미래의 서밋으로 부른다. 상처 위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언약 위에 삶을 세운다. 복음은 아이들을 꾸짖지 않는다. 복음은 아이들을 살린다. 말씀이 생각을 치유하고, 보혈이 죄의 사슬을 끊고, 성령이 두려움을 몰아낸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은 다시 숨을 쉰다. 오늘도 우리는 운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책임의 눈물로. 주여, 이 세대의 아이들을 살려 주소서. 그들이 다시 빛을 보게 하소서.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소음보다 아이들의 울음을 먼저 듣게 하소서. 지금은 예수님을 위해 울 때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일어설 때다. 아이 하나가 살아나면 시대 하나가 살아난다. 예수는그리스도. 📌 아이를 살리는 기도 찬양 "가정에서 시작되는 복음의 노래" 무료구독 ➡ 클릭

김서권 칼럼 #261ㅣ눈을 뜬 자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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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뜬 자의 흔적”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여리고의 먼지바람 속, 모두가 스쳐 지나가던 그 길가에 두 눈 먼 자가 있었다. 세상의 그림자는 그들에게 너무 오래 머물렀고, 그들의 어둠은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날, 누군가가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들은 소리쳤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그들의 외침을 막았다. “잠잠하라, 소란을 피우지 말라.” 그러나 그들의 절규는 더 커졌다. 절망이 희망을 삼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셨다. 수많은 발소리 속에서 그들의 음성 하나를 들으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은 대답했다.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분의 손이 그들의 눈을 만지셨다. 순간, 어둠이 흩어지고 세상이 처음으로 보였다. 빛이 그들의 안에 들어왔다. 그들은 곧 예수를 따랐다. 빛을 본 자는 더 이상 길가에 앉아 있지 않는다. 예수를 만난 자는 삶의 중심을 바꾼다. 그날, 그들의 눈은 열렸고 그들의 영혼은 빛을 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구걸하는 인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닌 증인이 되었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 흔적은 상처가 아니라 은혜의 표적, 세상이 지울 수 없는 구원의 자취. 이제 나도 묻는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빛에 눈을 떴는가? 세상은 여전히 어두우나 그리스도를 만난 자의 눈은 영원을 본다. 그 흔적이 내 안에 있다. 그것은 세상이 감히 빼앗을 수 없는 복음의 증거다. 오늘도 나는 그 빛을 따라 걷는다 — 예수를 본 눈, 그분의 흔적이 내 생애에 새겨졌기에. 예수는 그리스도 🎵 "내게는 예수의 흔적 뿐" 묵상/기도음악 🌿 무료구독 클릭 ➡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