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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권 칼럼 2026 #076ㅣ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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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모세는 떠났다. 위대한 지도자가 사라진 자리, 광야의 바람만 남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끝난 것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모세와 함께 한 것 같이 너와 함께 하리라.” 역사는 사람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언약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떠나도 언약은 죽지 않는다. 홍해를 가르신 분도 광야에 만나를 내리신 분도 요단을 여시는 분도 같은 하나님이시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본 것이 아니라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본 사람이다. 그래서 두려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그는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시대가 바뀌어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광야에서 그는 보았다. 애굽의 권세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굶주린 백성 위에 하늘의 만나가 내려오는 것을. 길 없는 사막 위에 하나님의 길이 열리는 것을. 그래서 그는 알았다. 문제가 온 것이 아니라 언약이 이루어질 시간표가 온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말씀을 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안다. 환경이 답이 아니라 언약이 답이라는 것을. 오늘 시대는 지식이 넘치고 정보가 넘치지만 사람들의 영혼은 방향을 잃고 있다. 불안과 경쟁, 두려움과 상처 속에서 세상은 묻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때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것이 시대를 깨우는 복음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서 사탄의 권세는 무너지고 죄와 사망의 쇠사슬은 끊어지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여호수아처럼 언약을 본 사람은 안다. 과거는 증거가 되고 오늘은 응답이 되고 미래는 하나님의 작품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김서권 칼럼 2026 #004ㅣ우물가에서 시작된 존귀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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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가에서 시작된 존귀한 역사"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사람들은 그 여인을 피해야 할 이름으로 불렀다. 다섯 번의 실패, 정오의 우물, 시선을 피해 선택한 시간. 그녀의 삶은 설명보다 소문이 앞섰고, 존재보다 과거가 먼저 불렸다. 그러나 그날, 역사는 방향을 바꾸었다. 예수는 우연히 그 우물에 앉으신 것이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어 사마리아에 머무신 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그 여인을 찾아 그 시간에 그 자리로 오셨다. 제자들이 보지 못한 길을 그분은 이미 알고 계셨고, 사람들이 외면한 인생을 그분은 존귀하게 보셨다. “물을 좀 달라.” 이 말은 부탁이 아니라 초청이었다. 부끄러움을 끌어내려는 질문이 아니라 존재를 일으키는 부르심이었다. 그녀는 몰랐다. 자신이 구원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녀를 죄의 기록으로 기억했지만, 예수는 그녀를 예배의 미래로 보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그 말씀은 산도 아니고 성전도 아닌 그 여인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정죄되지도 않았다. 진실은 드러났고, 은혜는 더 깊었다. 그 순간 여인은 대상이 아니라 증인이 되었고, 피해자가 아니라 전달자가 되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간 그녀의 발걸음 위에 하나님의 계획이 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면하던 여인을 통해 한 마을이 깨어났고, 한 시대가 메시아를 듣게 되었다. 우물가의 여인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신 존귀한 역사의 작품이었다. 오늘도 예수는 같은 방식으로 오신다. 사람이 피한 자리로, 사람이 숨은 시간으로.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물으신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가 아니라 “네가 나를 아느냐.” 그 질문 앞에서 인생은 다시 쓰인다. 우물가에서 시작된 그 이야기처럼. 예수는 그리스도시라. 📌 특별새벽기도회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랑의 말씀' 김서권목사 메시지 무료구독 ➡ 클릭

김서권 칼럼 #314ㅣ뿌리와 체질이 바뀌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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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와 체질이 바뀌는 날"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새해가 온다고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환경이 바뀐다고 체질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뿌리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겉을 고치지 않으시고 속을 바꾸신다. 행동보다 먼저 존재를 만지신다. 각인된 것을 보신다. 생각에 새겨진 말, 마음에 굳어진 두려움, 무의식처럼 반복되는 옛 체질. 그래서 하나님은 각인 운동을 말씀하신다. 오직 복음으로. 말씀이 들어오면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고, 예배가 살아나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난다. 경제도, 삶도, 관계도 복음 안에서 회복의 길을 찾는다. 기도는 시간이 아니라 호흡이 된다. 정해진 시간의 기도를 지나 막힘 없는 무시기도의 자리로 들어간다. 기도는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면 이미 완성에 이른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산다. 그래서 하나님은 뿌리를 바꾸라 하신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뿌리를 내렸고, 그 뿌리는 안디옥으로 퍼져 세계를 살렸다. 율법의 뿌리를 가진 자는 결국 무너지지만,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린 자는 이미 죽었고 이미 다시 산 자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밭은 네 마음이고, 씨는 말씀이며, 열매는 삶으로 드러난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로 천국의 체질을 가르치셨다. 말씀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말이 달라진다고. 기름부음은 직함이 아니라 사명이다. 우리는 참된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의 대사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질그릇 안에 담긴 보배를 안다. 겉은 연약해 보여도 속은 강하다. 무기는 육신에 있지 않고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옛 사람은 지나갔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내 안에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며, 나는 더 이상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배경을 가진 작품이다. 이제 작품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한 지역,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