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029ㅣ'임마누엘'을 누리는 삶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김서권 목사(좌)와 기독교 잡지 <교회와 신앙>(우)


나라가 부도란 경제위기 속에서 IMF시대라는 것에 대한 단단한 경고를 들었지만 처음에는 그다지 피부로 와 닿는 심각한 현상을 내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었다.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욕구라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복 또는 불행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야 영양을 골고루 갖추어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지 백설진미로 매일 잔칫상 받듯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요, 입는 것이야 깨끗하고 말쑥하게 검소한 옷차림으로 얼마든지 개성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의류시장은 다양하고 값싸며 고급스러운 품질로 발전해 있으니 별 문제가 될 리 없었다. 의식주에 대한 성도의 가치관은 이미 잠언서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뼈저리게 피부에 와 닿는 것이 기름값이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이며 보일러에 들어가는 기름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평소에 씽씽 달리던 운전체질을 자제하여 경제속도 60km로, 실내온도는 가장 쾌적하면서 경제적인 18도로 하향조절을 한 것이다.


이런 생활 속에서 특별히 마음 써서 기도할 제목은 성도의 경제 생활이었다. 직장에서 산업현장에서 좌절치 않고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어려운 때일수록 성도들의 삶에 더욱 각별한 마음이 가는 것은 아마도 목자의 심정이리라. 


성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공동체 목회다, 장애인 목회다 하면서 소위 특수 목회(?)를 해오는 가운데 참으로 여러 개성을 가진 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때는 나름대로 잘 배웠다는 정통신학으로, 공동체정신으로 온갖 인본주의를 동원하여 목회를 했던 터인지라 성도와 나와의 관계 또한 거의 인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방에서 썩고 있는(?) 젊은이를 데려다가 어렵사리 신학시켜서 전도사 하도록 열심을 다 내기도 하고, 열심히 같이 산기도 다니던 권사, 집사들을 야간으로 신학하게 해서 하나님께 헌신하라고(?) 종용하기도 했었다. 까마득한 전라도 섬나라에서 더벅머리 뱃사람 데려다가 서울신사 만들어서 그도 역시 신학공부시켜서 빛나는 전도사가 되게 했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도록 했으니 나는 대어를 낚아(?) 하나님 앞에 드린 격이 되었다.


말하자면 나의 어리석은 생각은 신학을 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첫번째 대어는 조상죄까지 끌어내어 창자가 끊어지도록 회개해야 죄가 씻기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이단에 빠져 시골 목회자로 어디엔가 있다는 소식이고, 두번째 대어들은 적당한 군소 신학교에서 재빨리 목사안수를 받고 어디선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다는 희미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사업체질 못 벗어서 심히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아울러 들려 온 것이 벌써 재작년 이야기이다. 전라도에서 온 뱃사나이는 어느날 부흥사로 나서서, 전봇대에 붙여진 '신비의 부흥회' 포스터에 사진이 박힌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신학으로 목회하며 인정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감싼 결과 그들 모두 진정한 목회자로서의 품위를 잃고 말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속에서, 그들 가운데 잠재되어 있는 주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주께서 보시고 하나씩 하나씩 연단시키고 성화시키리라 확신하는 마음으로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온 터이다.   


어찌됐든 나의 '헌신에 대한 시행착오'는 열정적인 성도만 보면 신학공부를 시켰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신학교에서 순서 밟아 졸업하면 목회자가 되는 것이고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신학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 진정으로 소명(Calling)을 받았는지 진지하게 묻고 금식기도 절차를 밟게 하기도 했고, 목회란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양과 함께 더불어 삶을 나누어야 한다는 철저한 공동체 정신이 사상화, 체질화되도록 강조하기도 했었다. 나름대로 훌륭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반짝이는 인본주의로 사랑을 가치로 내세우며 목회를 해 왔던 것이고 만나는 사명자들을 그런 식으로 똑같이 가르쳐왔었다.


그런데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데 나의 안타까움이 있다. 같이 삶을 나누는 공동체 정신은 좋았는데 영적인 메시지로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데는 소홀했고, 실제적으로 삶의 현장 속에서 '전도'라는 귀중한 의미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각종 인본주의 프로그램으로 그들을 가르친 결과 진정한 성령의 내주와 인도에 대한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물론 철야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집중기도, 통성기도로 줄기차게 부르짖는 기도 훈련을 시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진정한 성령의 인도, 즉 영이신 하나님과의 '임마누엘'로부터 오는 참 평안과 기쁨을 가르치지 못하고 그저 약간의 영적으로 방방 뛰었다는 데 또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간추려 말하자면, 영적으로 갈급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소명의식으로 불타는 사명자들에 대해 진정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신학공부나 해서 목회자가 되는 것으로 그들의 열정을 대신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우선 그들과 같이 열정적인 성도가 오면, 영적인 메시지를 주어서 그들의 영혼을 치유해 주고, 그 다음은 현장 속으로 내보내어 영혼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열리게 한 후 더불어서 전도해야 하는 필연성과 실제적인 전도훈련을 착실하게 성경적으로 쌓아가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악한 사단의 영으로 말미암아 문제 속에 빠진 불신자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그들이 직접 영적인 전투로 맞붙어 싸움으로써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확실한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놀라운 시간표를 바라보는 영적인 힘이 길러진 후에 신학공부를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밟지 못하고 목사가 된 그들이 대부분 이단에 빠지거나 신비주의, 극도의 인본주의, 결국은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목회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목사가 된 사람들이 전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열심히 뭔가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교회의 자리수 채우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착각하게 되어 온갖 인본주의를 동원하는 것이다. 그래도 잘 안 될 때는 전도란 은사 중 하나이니 전도 못하면 은사를 못 받은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고, 목사가 새끼 낳느냐 양이 새끼 낳지, 어서 가서 전도를 해오든지 자연 증가를 위해서 애를 낳든지 하라는 조크까지 나온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모든 은사의 목적이 전도일진대, 전도가 은사 중 하나라고 착각하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고, 전도는 그저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각자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판치는 것이 고도의 인본주의인 신비주의가 아니던가.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목회자 몇몇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진 평신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데 또한 큰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서 한국교회의 교인이 감소되고 교회가 무기력하게 되었다.


자꾸만 교인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교회는 또한 프로그램과 인본주의를 강화시키고, 그런 만큼 성령의 역사는 한국의 교회당을 떠나고 있다. 두려운 것은 유럽의 교회처럼 덩치 큰 괴물이 되어 유적지로 남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쉬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왜 교회당의 자리가 날로 비어가는지 교회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답은 하나이다. 교회가 성령충만을 잃어가고 있다. 더욱이 성경 66권이 힘주어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구약의 메시아 신약의 그리스도, 그리고 재림주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명확한 영적 메시지가 강조되지 못하고 그저 윤리강의, 도덕강의, 철학강의에 열을 올리고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서는 설교로 성도들의 영적인 병을 치유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시달리고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무속인으로 역술인으로 그리고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점쟁이의 점괘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백만이 넘는 역술인들이 삶의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무속인의 70% 이상이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다고 한다). 


어쩌다가 이 땅이 귀신들이 장악하는 땅이 되었던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교회들은 강남에 있는데 왜 그리도 강남은 늘 문제투성이 지역이 되어 있으며, 이 나라를 부도나게 한 주범들은 왜 그 곳에 다 모여 살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생의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영적인 방황을 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길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로서의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무기력한 교회는 러시아 교회처럼 정치와 야합하고, 중세교회처럼 권력과 결탁하여 타락하게 되어 성령을 마음대로 해석하며 일제시대의 교회처럼 교권과 타협하여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다.


이제 교회가 새 힘을 누려야 할 때이다. 교회가 성령충만하고 성도가 성령충만해야 한다.


성령충만한 삶은 무엇인가. 교회의 성령충만은 다름 아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찾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하나님이 불러 모은 성도의 모임,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 하나하나가 성전인 성도 하나하나가 이룩한 교회, 그 교회는 장소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성경적인 전도전략을 가지고 모여서 교제하고 흩어져서 전도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당에 모여 떡을 떼며 사랑을 나눌 줄만 알았지 과감하게 삶의 현장으로 흩어져 불신자들을 건져내고, 영적으로 시달리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생활에 있어 균형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영혼을 바라보지 못한 오늘날의 모습에서 벗어나 모여서 기도하고 흩어져서 전도하는, 그래서 영으로 지금도 살아서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정확하고 신묘막측한 그 인도하심을 뼈속 깊이 체험할 때만 교회는 살아나고 성도의 수는 회복되리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성령충만한 삶은 어떠한가. 우선 자신들의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내주하심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된 확신을 가지고 그 신분을 누림으로써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말씀을 가지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그 어떤 자신의 생각이나 인본적인 계획이어서는 안 된다.


영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시며 유일하고 완전 그 자체이신 분이시다. 그런 분이 우리 안에 계실진대 실패란 있을 수 없다. 만일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큰 그릇으로 빚으시려는 계획일 것이요, 낙심하였다면 그것은 기도하라는 사인이며, 갈등이 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최고의 기회이다.


이러한 '임마누엘'을 영혼 가운데 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충만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전도는 열심으로 되거나 은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샘솟듯 솟아나는 이 임마누엘의 기쁨을 말할 때 주변이 저절로 변화되어 이웃이, 형제가 변한다는 사실을 체험할 것이고, 이때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전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전도란 영혼 구원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소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소원이기 때문에 그 분이 하신다. 오직 우리는 도구일 뿐···. 


김서권 •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출처 : ⌜교회와 신앙⌟ 성령충만한 삶을 위하여, 1998.02.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바로 그 문제ㅣ바로 그 해답ㅣ속는 인생]ㅡ선악과는 왜 만드셨을까요?/서초동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님
영적세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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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아멘!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가지고 모든 일 앞에 마침표를 찍어, 오직의 집중으로 임하는 창대한 축복을 누리겠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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