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269ㅣ나를 싫어하는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가끔은 내가 제일 보기 싫다. 누군가 잘하는 걸 보면 마음이 뒤틀리고, 인정하기 싫은 질투가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자존감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자존심이다. “나도 잘할 수 있어.” “나도 인정받고 싶어.” 그 외침 속엔 그리스도를 잃은 나의 고아된 심령이 숨어 있다.

"나를 싫어하는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가끔은

내가 제일 보기 싫다.

누군가 잘하는 걸 보면 마음이 뒤틀리고,

인정하기 싫은 질투가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자존감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자존심이다.

“나도 잘할 수 있어.”

“나도 인정받고 싶어.”

그 외침 속엔

그리스도를 잃은 나의 고아된 심령이 숨어 있다.


이 시대는 “너는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상처를 포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우상일 뿐이다.

자존감이라는 이름 아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자란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나를 잃어가고,

결국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내 실패처럼 느껴진다.


복음은 말한다.

“너는 네가 사랑받을만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랑받고 있다.”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혁명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값으로 산 사랑의 언약 안에

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자존감은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존감은 그리스도의 존귀함이

내 안에 들어올 때 세워진다.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실 때,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나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를 통해 나의 교만을 비추신

하나님의 거울을 본다.

그 앞에서

나를 낮추는 순간,

은혜가 흘러 들어온다.

비교의 자리에서 벗어나

감사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시대의 병은

“나를 높이려는 예배”다.

그러나 복음의 길은

“나를 비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다.


그분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실 때,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의 자존심을 녹이고,

자존감을 새롭게 빚어

사명으로 변화시킨다.


나는 나를 사랑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내 안에서

질투를 감사로,

자존심을 겸손으로,

비교를 사명으로 바꾼다.


오늘도 나는

나를 싫어하는 나를 품으신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진짜 자존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복음의 나'를 다시 만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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