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311ㅣ아리스토텔레스의 헛된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의 궁극적 삶은 행복이며, 그 길은 이성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고.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석하고, 분류하고, 정의하고, 체계를 세웠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미덕인지 머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헛된 철학"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의 궁극적 삶은 행복이며,

그 길은 이성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고.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석하고, 분류하고, 정의하고, 체계를 세웠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미덕인지

머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닿지 못한 자리가 있었다.

이성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깊이,

논리로는 닿을 수 없는 균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말했지만,

“왜 이렇게 무너졌는가”에는 침묵했다.

행복을 말했지만

상실의 기원을 말하지 못했고,

미덕을 말했지만

죄의 뿌리를 보지 못했다.


인간은 단지

덜 훈련된 존재가 아니라

끊어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복음은

이성의 한계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만, 이성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려 할 때

침묵하지 않는다.


성경은 말한다.

문제는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근원이 끊어졌기 때문이라고.

행복을 잃은 이유는

이성을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복음은

“더 잘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연결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철학자가 찾던 행복의 정의가 아니라,

행복이 다시 시작되는 길로 오셨다.

이성 위에 계신 분이

이성을 버리지 않고,

이성 아래로 내려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논리가 아닌 생명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열매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따라오는 숨결이었다.


그래서 복음은 이렇게 답한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는 것이다.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다.


이성은 방향을 잡을 수 있지만

구원은 주지 못한다.

도덕은 사회를 유지할 수 있지만

영혼을 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성을 밝히고,

양심을 깨우고,

영혼을 살리신다.


오늘의 시대는

다시 행복을 말한다.

성공으로, 안정으로, 자기실현으로.

그러나 복음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한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상태라고.


이성은 귀하다.

그러나 구원은

이성의 끝에서 시작된다.

그 끝에서

그리스도는 오늘도 묻는다.

“너는 잘 생각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그 질문 앞에서

시대는 다시 살아난다.


예수는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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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아멘!
    행복을 목적 삼아 이성적 생각만 하다가 하나님과 단절된 이 시대에, 원죄로 인해 생명의 근원이 분리되어 행복을 잃었으니, 다시 행복이 시작되는 길 되신 그리스도를 전해주신 목사님, 참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행복을 목표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할 때 오는 열매로 기대하며,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예수는그리스도이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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