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109ㅣ율법적 정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라

 

"율법적 정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라"

ㅡ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260726. 주일 2부)

누가복음 12:1-12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 



광야보다 더 깊은 곳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모래바람보다 거센 것은

율법의 정죄였고,

밤의 어둠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의 시선이었다.


사탄은 오늘도

칼을 먼저 들지 않는다.

먼저 의심을 심고,

두려움을 키우며,

"너는 아직 부족하다."

"너는 용서받을 수 없다."

정죄의 목소리로

영혼을 무릎 꿇게 하려 한다.


그러나

갈보리 언덕 위에서

십자가는

모든 정죄의 문서를 찢어 버렸다.

보혈은

죄를 덮은 것이 아니라

죄의 값을 완전히 갚으셨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은

율법의 끝이며,

은혜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보다

하늘의 음성을 들으라.

세상의 박수보다

성령의 숨결을 따르라.


숨기려 하지 말고

빛 가운데 걸어가라.

두려움에 머물지 말고

진리를 붙들라.


보혜사 성령께서는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눈물 흘리는 자를 위로하시며,

침묵하던 입술에

복음을 노래하게 하신다.


세상은

입을 막으려 하지만,

성령은

담대함을 입히신다.


사탄은

죄를 기억하게 하지만,

성령은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신다.


사탄은

과거를 붙잡게 하지만,

성령은

영원한 언약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러므로

정죄와 싸우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두려움과 씨름하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라.


영적 대결은

사람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거짓보다 진리를,

율법보다 은혜를,

두려움보다 사랑을,

사망보다 생명을 선택하는

믿음의 여정이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께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 음성을 따라 걷는 자는

세상의 정죄를 넘어

하늘의 평안을 입고,

복음을 품은 증인으로 살아간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서

모든 두려움은 무너지고,

모든 정죄는 끝나며,

모든 광야는

하나님 나라로 이어지는

은혜의 길이 된다.


예수는그리스도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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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십자가에서 찢겨진 모든 정죄의 문서를 이젠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죄의 값을 완전히 갚으신 보혈이 제게 있는데 정죄와 싸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젠 저를 정죄하는 율법적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저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조용히 말씀하시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라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오늘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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