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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권 칼럼 2026 #067ㅣ죄인이라는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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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이라는 자격"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시대는 스스로를 건강하다 말한다. 기술은 발전했고, 의학은 정밀해졌고, 지식은 손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 공허해진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병들어 있는 시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문제는 병이 없어서가 아니라 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청년이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구원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겸손한 고백처럼 들리지만 하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아니다. 너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죄인이라는 조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사실. 그 고백이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이미 자격을 가졌다. 그러므로 복음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전 인류의 소망이다. 구원의 방법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사람은 값을 낼 수 없었고 사람은 스스로 씻을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값을 지불하셨다. 대속물로 오신 그리스도.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이름. 피로 속량하신 은혜. 우리 대신 죄가 되신 사랑. 십자가는 조건을 채우라는 요구가 아니라 다 이루었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상하다. 모두가 죄인인데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은혜를 거절하는 마음. 그 순간 구원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들어가지 않을 뿐이다. 이 시대는 완벽함을 요구한다. 성공을 증명하라 말한다. 흠 없는 이미지를 만들라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있는 그대로 오라.” 상처 그대로, 죄인 그대로, 실패한 채로. 그 자리가 구원의 출발점이다. 나는 깨닫는다. 구원은 강한 자의 상이 아니라 인정하는 자의 선물이다. 자격은 죄인이라는 사실, 방법은 은혜라는 사랑, 통로는 믿음이라는 손. 그 손을 내밀 때 십자가의 피가 오늘의 나...

김서권 칼럼 #313ㅣ한 줄기 빛, 그리스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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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기 빛, 그리스도의 날"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메리 크리스마스.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날. 혼돈과 공허가 깊게 깔린 세상, 말씀이 멀어지고 사람의 마음이 식어 가던 때, 창조의 첫 장면처럼 한 줄기 빛이 다시 비쳤다. 흑암 위를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영이 이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역사 속으로 오셨다. 갈릴리의 어둠에 큰 빛이 비쳤고, 압제의 멍에는 꺾였으며 전쟁의 장화 위로 평화의 발자국이 남았다. 한 아기가 태어났으나 그분은 단순한 아기가 아니었다.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그 이름은 예수. 그 뜻은 분명하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자.” 하나님의 언약은 침묵하지 않았고 예언은 멈추지 않았으며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오신 하나님. 이 날은 장식의 날이 아니고 소비의 날도 아니다. 이 날은 빛이 다시 시작된 날, 구원이 역사로 들어온 날, 어둠이 패배를 인정한 날이다. 오늘도 세상은 어둡고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지만 빛은 꺼지지 않았다. 한 줄기 빛, 그리스도. 그 빛은 지금도 혼돈 위를 비추고 공허 속을 살리며 흑암을 밀어낸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것은 하루의 인사가 아니라 시대를 향한 선언이다. 빛이 오셨고, 빛이 계시며, 빛은 다시 오신다. 예수는그리스도이시다. 📌 Playlist 고요한 밤, 깊은 울림을 주는 크리스마스 캐롤 모음 🎄 영혼을 울리는 크리스마스 CCM ➡️ 클릭

김서권 칼럼 #309ㅣ흑암이 떤다 — 예수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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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암이 떤다 — 예수는 그리스도"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흑암은 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름 앞에서는 침묵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이 불릴 때 어둠은 자기 자리를 잃는다. 사람의 밤이 길어질수록 거짓은 지혜인 척 말을 배우고, 두려움은 상식의 옷을 입는다. 그 틈에서 흑암은 익숙함으로 마음을 묶는다. 하지만 한 이름이 들리면 묶인 매듭은 스스로 풀린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름은 주문이 아니라 선언이다. 죄가 용서받았다는 선언, 속임이 끝났다는 선언, 죽음이 통치하지 못한다는 선언. 그래서 흑암은 떤다.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는 불이 많다. 그러나 빛은 적다. 사람들은 바쁘고 영혼은 지쳐 있다. 그 한가운데서 조용히 불리는 이름— 예수는 그리스도. 이름은 심장에 닿아 방향을 바꾼다. 이 이름이 불릴 때 중독은 힘을 잃고, 분노는 이유를 잃으며, 절망은 명분을 잃는다. 보이지 않던 쇠사슬이 끊어지고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선다. 시대는 답을 묻는다. 교회는 더 큰 소리가 아니라 더 분명한 이름으로 응답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이 살아 있을 때 도시는 숨을 쉬고 가정은 회복되며 현장은 교회가 된다. 흑암이 무서워하는 이름, 그러나 상처 난 자는 안식하는 이름. 억눌린 자는 자유를 얻고 잃은 자는 길을 찾는다. 오늘도 우리는 말한다. 크게, 그러나 단순하게.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고 그 고백이 시대를 살린다. 예수는그리스도이시라. 🎤인생이 꼬일 때 외쳐보세요🔊"주는 그리스도!" 무료구독 ➡ 클릭

김서권 칼럼 #307ㅣ영적 전쟁의 본질; 빛으로 싸우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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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전쟁의 본질; 빛으로 싸우는 전쟁"  ㅡ 창세기 1장 1–3절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선언이다. 전쟁은 이미 시작도 전에 결론이 정해졌다는 선언. 그러나 그 다음 장면은 의외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창세기 1장 2절)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혼돈인가. 창조주가 주인이신데 왜 흑암인가. 이것이 영적 전쟁의 실체다. 하나님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한 어둠의 잔재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 흑암은 새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빛이 없는 자리에서 기생하는 반역의 흔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한 줄이 이어진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어둠 위에 이미 성령이 운행하고 계셨다.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주도권은 이미 하나님께 있었다. 영적 전쟁은 우리가 먼저 나서는 싸움이 아니다. 성령의 운행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칼을 들지 않으셨다. 번개를 내리지도 않으셨다.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전쟁의 방식은 폭력이 아니라 말씀이었다. 빛은 어둠과 협상하지 않고, 어둠을 분석하지도 않으며, 어둠을 설득하지도 않는다. 존재하는 순간 어둠은 물러난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영적 전쟁의 방식이다. 싸우려 하지 말고 빛을 켜라. 어둠을 이기려 애쓰지 말고 말씀을 선포하라. 혼돈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말씀의 질서 안에 서라. 오늘의 영적 전쟁은 감정의 싸움이 아니다. 사람과의 다툼도 아니다. 환경을 바꾸는 운동도 아니다. 생각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정체성의 자리에서 누가 주인인가의 싸움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의 싸움.” 이 싸움은 더 강해지는 것으로 이기지 않는다. 더 옳아지는 것으로도 이기지 않는다. 빛 안에 거하는 것으로 이긴다. 그리스도는 이 전쟁의 완성이다. 그분은 빛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십자가에서 흑암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