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2026 #060ㅣ하나님의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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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미션"  ㅡ 사도행전 1:1~8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교회는 건물이 아니었다. 모이는 장소도, 행사의 이름도, 종교의 전통도 아니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를 향해 단 하나를 남기셨다. 미션.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 형편이 좋아집니까? 언제 문제가 해결됩니까? 언제 나라가 회복됩니까? 제자들도 물었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선 자체를 바꾸셨다. 시간은 너희의 것이 아니고 환경도 문제가 아니며 세상의 흐름도 두려워할 이유가 아니다. 오직 하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미션 없는 삶은 방향 없는 항해와 같다. 예배는 드리지만 이유를 모르고, 신앙은 있지만 목적을 잃어버린 시대. 그래서 교회는 많아졌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미션을 잃었기 때문이다. 갈보리에서 죄의 문제가 끝났고, 감람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설명되었으며,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했다. 이 세 가지 안에 모든 답이 있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충만. 하나님의 미션은 특별한 사람만의 부르심이 아니다. 목회자만의 사명도, 선교지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하늘의 명령. 가정에서, 직장에서, 도시 한복판에서, 삶 자체가 증거가 되는 것. 예수는 떠나신 것이 아니라 미션을 남기고 보좌로 가셨다. 그리고 지금도 묻고 계신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은 성공을 미션이라 말하지만 하늘은 생명을 말한다. 돈이 아니라 사람, 경쟁이 아니라 회복, 정복이 아니라 복음. 땅끝까지— 가장 가까운 한 영혼부터 가장 먼 민족까지. 성령이 임한 사람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평범한 성도를 통해 시대를 움직이신다. 미션을 가진 한 사람, 복음을 아는 한 교회, 성령으로 사는 한 공동체. 그곳에서 역사는 ...

김서권 칼럼 2026 #059ㅣ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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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ㅡ 마가복음 1:25-26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세상은 점점 똑똑해졌지만 사람의 영혼은 점점 설명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학은 발전했고 정보는 넘쳐나는데 왜 사람의 마음은  더 불안하고 더 분노하며 더 미쳐가는가. 도시는 커졌지만 영혼은 보이지 않는 정신병동 속을 걷는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 욕망이 모이는 곳, 인기가 흐르는 곳, 돈과 성공이 집중되는 곳— 그곳에 보이지 않는 영적 소음이 있다. 귀신은 무서운 얼굴로 오지 않는다. 축복의 언어로 오고, 성공의 약속으로 오며, “잘될 것이다”라는 달콤한 말로 사람의 생각 안에 자리 잡는다. 예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존재는 종교인이 아니었다. 귀신이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어둠은 빛을 정확히 안다. 그래서 귀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은 도덕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며 행위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날 회당 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한 사람. 겉으로는 평범했지만 속은 점령당한 영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씀 한마디에 숨겨졌던 어둠이 비명을 지른다. 진짜 복음이 선포될 때 반응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묶고 있던 영적 권세다. 지금도 그렇다. 예수를 이용해 세상 복을 얻으려 할 때, 신앙으로 자기 욕망을 채울 때, 하나님을 성공의 도구로 만들 때 이미 마음의 왕좌는 다른 존재에게 내어준 것이다. 귀신은 예배를 막지 않는다. 교회도 막지 않는다. 단지 그리스도를 모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묶여 있고, 기도하면서도 두려우며, 신앙을 말하면서도 끝없이 다툰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통치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가 이미 선언하셨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중독에게, 두려움에게, 탐욕에게, 거짓에게. "잠잠하라. 내 백성에게서 나오라." 복음은 사람을 착하게 만드...

김서권 칼럼 2026 #058ㅣ나무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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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와 열매"   ㅡ 마태복음 7:15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이 시대는 끊임없이 열매를 요구한다. 성과를 말하고, 결과를 비교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외친다. 종교도 말한다. “착해져라.” “바르게 살아라.” “훌륭한 열매를 맺어라.” 사람들은 열매를 붙잡고 자신의 나무를 바꾸려 애쓴다. 그러나 예수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열매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다. 먼저  나무를 보라고 하셨다. 가시나무는 노력해도 포도를 맺지 못하고, 엉겅퀴는 결심해도 무화과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행실이 아니라 뿌리였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 경건의 언어를 말하지만 영혼을 묶는 시대. 겉은 사랑을 말하지만 속은 두려움, 경쟁, 정죄. 열매를 흉내 내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지쳐간다. 왜인가. 나무는 그대로인데 열매만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행동 교정의 책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고쳐 쓰려 하지 않으셨다. 대신 새 나무를 준비하셨다. 갈보리 언덕에서 죽은 나무 위에 새 생명을 심으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접붙임 될 때 열매는 억지가 아니라 생명처럼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열매란 완벽한 행실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 현장을 살리는 생명의 흐름.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은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열매가 그 사람을 통해 자라난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행실을 명령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묻는 제자들에게 그는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행1:8) 열매의 비밀은 노력이 아니라 성령이었다. 오늘도 세상은 열매를 평가한다. 그러나 하늘은 묻는다. 너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나무에 연결되어 있는가. 복음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사는 길이다. 그리스도 안에 심긴 자는 이미 좋은 나무다. 그리고 어느 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