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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권 칼럼 2026 #066ㅣ아무도 줄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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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줄 수 없는 것"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아무도 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이미 주셨다. 세상은 위기를 말하지만 하늘은 시간표를 말한다. 사람들은 끝이라 하지만 언약은 시작을 선언한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준비되고 있었고, 답이 사라진 시대일수록 복음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400년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다. 노예의 울음 속에서 이미 해방을 계획하고 계셨다.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다.” 그 한마디가 역사를 움직였다. 왕궁의 힘이 아니라 광야의 언약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생의 운명이라 불리던 사슬이 어느 날 끊어진다. 노력으로도, 지식으로도, 종교로도 풀리지 않던 인생이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조용히 무너진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순간, 묶였던 영혼이 숨을 쉬고 두려움이 떠나가며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린다. 해방은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존재. 어둠에 갇힌 세계는 여전히 우상을 붙잡고 있지만 복음은 선언한다. 빛은 싸우지 않는다. 단지 비출 뿐이다. 진리가 임하면 거짓은 스스로 무너진다. 그래서 복음은 한 민족을 넘어 한 시대를 넘어 세계를 깨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한 사람의 심장에서 시작되어 대륙을 건너간다. 후대는 말로 살아나지 않는다. 보여진 언약으로 살아난다. 앉아 있을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눈물의 밤에도, 성공의 낮에도 오직 하나가 흐르게 하라.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이 생각이 되고 기도가 되고 삶이 될 때 후대는 무너지지 않는 망대를 갖게 된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환경도, 실패도, 사람의 평가도 건드릴 수 없는 것. 진리를 아는 순간 영혼은 자유하게 된다. 위기는 축복의 입구가 되고 외로움은 하나님을 만나는 방이 되며 기도는 역사를 움직이는 숨이 된다. 그때,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 평범한 사람이 시대를 살리는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오늘도 하나님...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071ㅣ두려움의 풍랑을 잠재우는 창조주 하나님, 그리스도의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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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위에 잠드신 평안” ㅡ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260301. 주일 2부) 누가복음 8:22~25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 밤바다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제자들은 익숙한 물결 위에 익숙한 노를 저으며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풍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파도가 배를 삼킬 듯 일어나며 물이 점점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간, 확신은 공포로 바뀌고 경험 많은 어부의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예수님은 잠들어 계셨다. 세상은 묻는다. 왜 하나님은 내가 가장 두려울 때 침묵하시는 것 같을까. 예수님의 그 잠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이미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평안이었다. “건너가자.” 그 한마디 말씀 위에 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풍랑은 바다에 있었지만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더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제자들은 외쳤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때 주님이 일어나 바람을 향해 말씀하셨다. “잔잔하라.” 마치 태초의 혼돈 위에서 빛을 부르시던 창조주의 음성처럼 바다는 즉시 순종했다. 자연은 알아보았다. 자신을 만드신 분의 목소리를. 그리고 세상은 완전히 고요해졌다. 그러나 주님은 바람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셨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문제의 크기를 묻지 않으셨다. 풍랑의 이유도 묻지 않으셨다. 다만 믿음이 서 있는 자리를 물으셨다. 평안은 파도가 사라질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가 내 인생의 배 안에 계신 것을 알아보는 순간 시작된다. 오늘도  인생의 바다는 흔들리고 시대의 바람은 거세지만,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신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안다. 풍랑이 끝나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셔서 이미 평안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평안 속에서 우리는 다시 저편을 향해 조용히 나아간다. 예수는그리스도  📌 '두려움의 풍랑을 잠재우는 창조주 하나님, 그리스도의 평안 (누가복...

김서권 칼럼 2026 #047ㅣ부끄러움이 끝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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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이 끝나는 자리"  ㅡ 베드로전서 2장 6절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저녁이 내려오면 사람은 낮 동안 숨겨 두었던 마음을 마주한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늦게 가는 삶을 부끄러워하고, 누군가는 가진 것이 적은 현실을 감추려 한다. 사람은 더 좋은 이름, 더 좋은 옷, 더 좋아 보이는 이야기로 자신을 덧칠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뒤처지지 말라고, 비교에서 지지 말라고, 보여지는 모습이 곧 가치라고. 그러나 성경은 조용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무엇인가. 작은 집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소박한 옷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가난한 시간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가장 깊은 부끄러움은 하나님과 멀어진 마음, 죄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영혼의 무지'였다. 사람은 선한 행위로 자신을 가리고, 종교적 열심으로 마음을 설득하지만, 숨길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 위에 구원을 세우지 않으셨다. 시온에 두신 한 돌, 버려졌으나 보배로운 모퉁잇돌. 그리스도. 사람이 감당해야 할 수치와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그분이 대신 짊어지셨다.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실패는 정죄가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 되었다. 이제 믿는다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이루신 사랑 위에 자신의 삶을 올려놓는 일이다.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저녁이 깊어질수록 이 말은 더 선명해진다. 오늘도 부족했고, 오늘도 넘어졌지만,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전도의 여정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라 부끄러움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 조용히 빛을 전하는 길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 하루의 끝에서 다시 고백한다. 나는 나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모퉁잇돌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예수는그리스도 📌 "잠 못 이루는 밤, 그리스도와 함께 자요" 마음이 평온해지는 은헤찬양 무료구독 ➡ 클릭

김서권 칼럼 2026 #045ㅣ복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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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 있는 사람은"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복 있는 사람은  알고리즘이 이끄는 방향으로 걷지 않는다. 분노와 조롱이 넘실대는 말들 속에 오래 서 있지 않고  냉소가 지혜인 것처럼 포장된 자리에도 앉지 않는다. 세상은 말한다. 다 그렇게 산다. 너만 손해 보지 마라. 지금 안 잡으면 끝이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 소음 속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다른 음성을 듣는다. 그는 여호와의 음성을 즐거워한다. 의무처럼 읽지 않고  체크리스트처럼 소비하지 않는다. 말씀이 그의 생각을 바꾸고. 말씀이 그의 선택을 붙들고. 말씀이 그의 하루를 설명하게 한다. 그래서 낮에도 밤에도 그의 마음은 말씀 위에 머문다. 그는 급하지 않다. 모두가 빨리 가는 길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먼저 키우는 나무처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시간속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 때가 이르면  그는 열매를 맺는다.  억지로 짜낸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맺힌 열매다.  그의 삶에는 마르지 않는 이유가 있고  그가 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악인은 다르다.  뿌리가 없다.  바람이 불면 방향을 바꾸고 여론이 흔들리면 함께 떠밀려 간다.  말은 많지만 남는 것은 없고 움직임은 크지만 목적지는 없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의인의 길 위에도  서지 못한다.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의인의 길을.   눈에 띄지 않아도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든  어떤 여론 한가운데 있든  어떤 고난의 계절을 지내고 있던  말씀위에 서 있는 사람은 이미 복 있는 사람이다. 예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