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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권 칼럼 2026 #011ㅣ위르겐 몰트만은 복음은 충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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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르겐 몰트만은 복음은 충만하지 않았다"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고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와 포로수용소의 밤을 지나며 그는 말했다. 하나님은 고통 밖에 계신 분이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라고. 그의 말은 차갑지 않았고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았다. 희망은 미래의 도피가 아니라 현재를 여는 약속이라 했고 신학은 책장이 아니라 거리와 역사 속에서 숨 쉬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 희망에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십자가의 고난은 있었으나 부활의 유일성은 흐려졌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있었으나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오직성은 중심에 서지 못했다. 고통에 참여하는 하나님은 말했지만 사탄의 권세를 멸하신 왕 되신 그리스도는 선명하게 선포되지 않았다. 희망은 말했으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영혼을 부르는 전도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문했다. 이 신학이 위로는 주지만 왜 인생은 바뀌지 않는가. 왜 교회는 정의를 말해도 영혼은 여전히 묶여 있는가. 고난을 이해하는 신학은 있었으나 죄를 끝내는 복음은 약했고 해방을 말했으나 사탄의 결박을 끊는 권세의 복음은 부재했다. 희망은 선포되지 않으면 구조가 되고, 전도 없는 신학은 결국 지적인 종교가 된다. 창세기 3장 15절은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침입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직접 들어오신 선언이다. 여자의 후손은 고난에 공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뿌리인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러 오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연대만을 보여준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전쟁의 종결이었다. 부활은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새 창조의 시작이었다. 전도 없는 희망은 긴장만 남기고 복음 없는 정의는 또 다른 피로를 만든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먼저 복음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 삼위일체의 사랑은 관계의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고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아버지께로 데려오는 구원의 역동이다. 그래서 신학은 다시 물어야 한다...

김서권 칼럼 2026 #007ㅣ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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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사도행전의 한 장면이 오늘의 교회를 비춘다. 은을 들고 서 있던 사람, 능력을 사고 싶어 했던 손. 기도가 아니라 거래를 내밀던 마음.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살 줄로 생각했느냐.” 그 말은 그 시대만을 향한 책망이 아니었다. 오늘의 교회는 겉으로는 더 커졌고, 건물은 높아졌으며, 시스템은 정교해졌다. 그러나 전도는 뒤로 밀리고, 구원은 프로그램이 되었으며, 십자가는 장식이 되었다. 우리는 말한다. “때가 어렵다.”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복음이 불편해졌고 구원이 비효율이 되었으며 헌신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바벨론처럼 쌓아 올려지고, 하나님의 이름보다 재정 보고서가 먼저 열린다. 사람은 숫자로 평가되고 영혼은 성과로 환산된다. 기도는 전략이 되고 헌금은 힘이 되며 복음은 선택 사항이 된다. 그러나 천사는 돈에 반응하지 않고 성령은 거래되지 않으며 구원은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전도가 멈춘 교회는 아직 노래를 부르지만 이미 숨을 쉬지 않는다. 구원이 빠진 예배는 울림이 없고 십자가가 빠진 메시지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사도행전의 책망은 오늘도 울린다.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하다.” 이 말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의 초청이다. 다시 복음 앞으로 돌아오라는. 다시 영혼을 보라는. 다시 값없이 주어진 은혜를 전하라는 부르심이다. 돈으로 쌓은 바벨은 반드시 무너지지만, 무릎으로 세운 교회는 다시 살아난다. 오늘, 교회가 선택해야 할 것은 확장이 아니라 본질이다. 구원, 전도, 십자가. 돈으로는 살 수 없지만 생명으로만 전해지는 것. 그것이 이 시대가 다시 들어야 할 복음이다. 예수는그리스도 이시다.  

김서권 칼럼 #297ㅣ보좌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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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하루의 문을 열면 사람들은 또 바쁘게 움직이고 세상은 또 문제를 쌓아 올리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먼저 자기 안에서 울리는 하늘의 기척을 바라본다. “보좌의 능력이 너희 안에 있다.” 이 한 문장은 영혼을 살리고, 시대를 깨우고, 흑암의 골짜기를 뒤집는 하늘의 선언이다. 많은 이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응답을 바깥에서 찾으려 하지만 성경은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보좌는 멀리 있는 왕좌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기로 정하신 자리, 바로 내 안이다. 내가 흔들릴 때도 보좌는 흔들리지 않고, 내가 약해질 때도 보좌의 능력은 더욱 강하게 흐른다. 사람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좌의 권세가 나를 붙들고 밀어 올린다. 그래서 아침이 다르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보좌가 나를 깨우는 시간이다. 말씀 한 줄이 망대가 되고 기도 한 마디가 흑암을 꺾는다. 사람이 만든 스케줄보다 하나님이 여시는 하늘의 흐름이 더 먼저 움직인다. 낮에는 모든 일이 달라진다. 무심히 지나가던 길에서도 성령의 발자국이 보이고, 평범한 말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 있다. 만남이 우연이 아니고 상황이 실수가 아니며 흐름을 따라가면 보좌의 여정 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밤은 더 깊다. 흔들렸던 하루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해석되는 시간. 눈물은 이유를 찾고 문제는 방향을 얻으며 막혔던 길은 하나님의 이정표가 된다. 그렇게 밤은 약함의 시간이 아니라 보좌의 일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은 늘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사람을 일으키셨다. 요셉의 감옥, 다윗의 들판, 사무엘의 조용한 성전, 바울의 회당과 감옥… 사람들이 지나치던 그 자리가 하나님이 보좌의 능력을 드러내는 현장이 되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선명해지고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은 더 크게 보이며 흑암 속에서 빛은 가장 밝게 드러난다. 보좌의 능력은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