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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권 칼럼 2026 #006ㅣ말씀보다 앞서는 시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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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보다 앞서는 시대는 없다"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속도는 빨라졌고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는 점점 희귀해진 시대, 사람들은 더 많이 알수록 더 쉽게 길을 잃는다. 전문가는 많아졌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쏟아지지만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내 안에 머무는 한 문장이 있다. 하루를 건너고 시대를 지나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음성. “주의 계명은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원수는 겉으로 드러난 적만이 아니다. 두려움, 분노, 비교, 조급함, 그리고 말씀 없이 선택하려는 내 안의 교만도 원수다. 세상은 힘으로 이기라 말하고 계산으로 앞서라 말하지만 말씀은 기다림으로 이기고 순종으로 앞서라 말한다. 주의 계명은 내 주머니 속 지식이 아니라 내 삶 속에 거하는 길이다. 항상 함께하시는 말씀은 전략이 되고, 분별이 되고, 침묵 속에서도 방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안다. 이 시대를 이기는 지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말씀임을. 말씀을 붙든 사람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 걷는다. 원수보다 지혜롭게, 혼란보다 단단하게, 오늘도 말씀과 함께. 예수는그리스도 📌 [무한반복] "하나님의 나라 이정표 따라" 무료구독 ➡ 클릭

김서권 칼럼 2026 #002ㅣ예수그리스도의···신비한 죽음, 해방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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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그리스도의···신비한 죽음, 해방의 시작"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이 시대는 살아 있으나 늘 죽음을 연습한다.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인정받지 못할까 불안해하며, 내 것을 잃을까 움켜쥐고, 이별을 견디지 못해 집착한다. 철학은 말한다. 죽음은 삶의 연속이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그 연속은 빛이 아니라 점점 깊어지는 어둠의 통로였다. 사람은 죽음을 피해 더 열심히 살지만, 그 열심 속에서 이미 죽음의 종이 된다. 그때, 그분이 오셨다. 혈과 육을 입고, 우리와 같은 몸으로, 같은 숨으로, 같은 눈물로. 그는 죽음을 피해 오지 않으셨다. 죽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셨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었다. 죽음의 세력을 붙든 자, 마귀를 멸하는 자리였다. 두려움을 무기로 삼아 인생을 묶어 두던 사슬을 그 자리에서 끊어내셨다. 이제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 인정받지 못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내 것을 잃는다고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별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지금, 그분이 내 안에 사신다. 이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해방이다. 이 죽음은 어둠이 아니라 자유다. 천사를 붙드신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인간을 붙드신 죽음, 아브라함의 자손을 놓지 않으신 하늘의 결단. 죽음을 두려워해 한평생 종노릇하던 나를 아들로 일으켜 세운 신비한 죽음. 오늘도 이 죽음의 비밀은 두려움 속에 묶인 자들에게 조용히 전해진다. 죽음을 이긴 죽음이 너를 자유케 하였다고. 예수는그리스도 이시라.

김서권 칼럼 #270ㅣ율법주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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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의 함정···"  ㅡ 땅에 묻힌 달란트, 다시 빛으로.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기 전, 그는 종들에게 각자의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둘, 하나. 그것은 시험이 아니라 신뢰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한 종은 그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 그는 말했다. “주인은 엄한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흩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습니다.” 그의 말은 경건했으나, 그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의 행위는 조심스러웠으나, 그의 믿음은 멈춰 있었다. 율법은 흙처럼 보였다. 단단하고, 안전해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없었다. 그는 흙 속에 복음을 묻었다. 말씀을 지식으로 보관하고, 은혜를 행위로 감쌌다. 그리고 그것을 의로 착각했다. 그가 지킨 것은 율법이었으나, 그가 잃은 것은 생명이었다. 반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즉시 그 달란트를 들고 세상으로 나갔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했다. 손에 흙이 묻었고, 눈물이 섞였으나 그 속에서 생명이 번성했다. 그들은 장사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나눈 것이었다. 그들의 삶은 계산이 아니라 복음의 순종이었다. 결산의 날, 주인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셨다. 행위로 감춘 믿음은 빛을 잃었고, 믿음으로 드러낸 행위는 빛이 되었다. 그날 주인은 말씀하셨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는 경고가 아니라 영적 법칙이었다. 믿음은 나눌수록 커지고, 은혜는 흘려보낼수록 풍성해진다. 이 시대에도 많은 이가 묻고 있다. “주님, 제가 주신 달란트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두려워만 했구나.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했노라. 그 사랑을 세상에 심었더라면, 그 사랑이 다시 열매 맺었을 텐데.” 복음은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명이다. 믿음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증거하는 능력이다. 오늘도 주님은 그 달란트를 다시 나누신다. 그분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 ...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037ㅣ모세의 연약함을 도우라고 동역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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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이 둔하나, 주는 나와 함께 하신다" ㅡ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251019. 주일 1부) 출애굽기 4:10-17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 모세는 말했다.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 고백은 겸손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결함을 더 크게 본 인간의 떨림이었다. 그러나 그 떨림 속에서 하나님은 한 세대를 일으키는 말씀을 주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벙어리와 귀머거리와 눈 밝은 자와 어두운 자를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그날 모세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무대가 되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으신다. 그분은 연약함을 덮으시고 그 연약함을 통하여 세상을 깨우신다. 모세가 두려워하며 물러서려 할 때, 하나님은 동역자 아론을 붙이셨다. “그가 너의 입이 될 것이다.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그 순간, 하늘의 권세가 한 사람의 두려움 위에 임했다. 한 사람의 부족함 위에 하나님의 언약이 세워졌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말 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순종하기를 원한다.” 능력은 언어에서 나오지 않는다. 권세는 배운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부터 흐른다. 주께서 주신 지팡이, 그것은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언약의 증거요,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는 표징이다. 그 지팡이로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이 터지고, 애굽의 왕들이 무너졌다. 지팡이는 인간의 손에 들렸으나, 그 손을 움직인 이는 하나님이셨다. 오늘의 모세들이여, 입술이 둔하다고 물러서지 말라. 사람의 설득보다 강한 것은 순종의 손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두려움 속에 머무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만 보지만, 순종으로 일어서는 자는 하나님의 권세를 본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신다. 그 약속은 시대를 깨우는 불꽃이다. 그 불꽃이 한 사람의 마음에 붙을 때,...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035ㅣ모세의 확신을 위해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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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의 확신을 세우신 하나님의 사랑” ㅡ 하나님의 히스토리에 의한 성경해설 (251012. 주일 1부) 출애굽기 4:1-9 📘 예수사랑교회 김서권목사 모세는 두려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위대했으나, 그의 마음은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바라보았고,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사람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자신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복음의 신비를 믿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대신 물으셨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손엔 지팡이 하나, 오랜 세월 목자의 막대기로만 쓰이던 나무막대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손을 붙잡으시는 순간,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었다. 뱀으로 변했다가, 다시 손에 잡히자 두려움은 순종으로 바뀌었다. “내 손을 품에 넣으라.” 그 손은 나병에 걸렸고, 다시 품에 넣으니 깨끗해졌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알려주셨다. “네가 부정해도, 내가 너를 덮으면 새로워진다.” 하나님은 모세의 불신보다 그의 상처를 보셨다. 광야의 세월 동안 굳어진 그의 마음을 하나님의 손으로 녹이셨다. 사탄은 속삭였다. “너는 이미 실패했다. 너 같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아니다. 나는 여호와다.” 모세의 확신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자신의 경험에서 오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데서 태어났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은 기적보다 큰 사랑으로 우리의 불신을 껴안으신다. 우리가 무너질 때, 그분은 다시 묻는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손은 빈손이었으나, 하나님의 손이 함께할 때 세상을 움직이는 손이 되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연약한 인간의 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사랑, 믿음 없는 자에게 확신을...